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48)

발라클라바에 대한 관심은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
사회 문제점을 드러낸 결과

▲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에서 발라클라바를 쓰고 등장한 세계적 팝 가수 리한나(Rihanna). <출처 : 리한나 인스타그램>

‘목출모(目出帽)’라는 게 있다. 눈만 내놓는 얼굴 쓰개다. 발라클라바(Balaclava)가 서양식 이름이다. 은행털이범이나 도둑들이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 주로 쓰는 복면이다. 발라클라바는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 있는 지명에서 비롯됐다. 크림전쟁 때(1853∼1856년 러시아와 오스만투르크·영국 프랑스 등 연합군이 크림반도·흑해를 둘러싸고 벌인 전쟁) 이곳에 주둔해 있던 영국군이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눈만 내놓고 머리 전체를 덮도록 털실로 짜 만든 쓰개에서 유래됐다. 원래 방한을 위해 개발됐지만 강도나 테러리스트들이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 쓰다 보니, 은행털이범 같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졌다.

세월이 흐르며 바라클라바의 용도가 넓어졌다. 보온을 위해서 동계 스포츠용이나 사막에서 모래바람이 입과 코로 들어가지 않도록 사용되기도 하고, 신분을 감추기 위한 온갖 범죄에 악용되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강한 메시지를 전하는데도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얼마 전 모 국회의원이 셀프 디스(self dis : 상대방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자신의 잘못이나 약점 따위를 드러내어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일) 수단으로 마미손 고무장갑 색의 바라클라바를 쓴 자기 모습을 유튜브에 올려 관심을 끈 일도 있었다.

이 발라클라바가 드디어 패션계에 등장했다. 그것도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구찌. 디올, 마르니, 캘빈클라인 등이 유행을 선도하고 있다. 국내 브랜드들도 뒤질세라 이 유행에 동참하는 중이다. 2018 F/W 패션쇼에 모델들은 소방복이나 드레스에 하이힐을 신은 여성스러운 복장에도 얼굴을 감싸는 발라클라바를 쓰고 등장했다. 발라클라바를 보석으로 장식하거나 화려한 모자나 안경 등과 결합해 가면을 쓴 듯한 효과를 주기도 했다. 지난 4월 미국 코첼라 뮤직 페스티벌(캘리포니아주 인디오의 사막 지대 코첼라 밸리에서 행해지는 야외 록 축제)에서는 세계적 팝 가수 리한나(Rihanna)가 크리스털로 장식된 구찌의 발라클라바를 쓰고 등장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녀의 이 기괴한 패션에 팬들은 ‘매우 멋지다(Super Cool)’며 열광했고, 해당 제품은 6일 만에 매진됐다. 발라클라바에 대한 관심과 유행은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 이 사회의 문제점들을 잘 드러내는 결과라는 의견들이 적지 않다.

현대인들은 소셜 미디어의 영향으로 개인의 정보가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고, 도시 곳곳에 설치돼 있는 카메라에도 감시당한다는 불안감이 있어 자신을 숨기거나 ‘왜곡’하기 위해 얼굴을 덮는 소품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또한 지구의 온난화가 불러온 재앙으로 올겨울 닥칠 견디기 힘든 극한의 추위에 대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이와 함께 아름다움의 범주와 관계없이 색다른 자극을 찾는 시대정신이 낳은 유행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이건 발라클라바가 현대인의 감성에 바싹 다가와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추위의 끝이 어딜지 종잡을 수없는 이 겨울, 발라클라바를 가장 지혜롭게 활용할 방법을 열심히 찾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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