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72)

파블로프(Ivan P. Pavlov, 1849~ 1936)라는 러시아의 생리학자가 있다. 그는, 심리학에서 예외없이 다루는 말로 우리가 학교 때 과학시간에 배웠던 ‘조건반사(conditioned reflex)’란 말을 이 세상에 내놓은 사람이다. 그는 1902년 개의 침샘을 연구하던 도중, 자신에게 먹이를 주는 사육사의 발소리 만을 듣고도 개가 침을 흘리는 것을 발견하고 이른바 ‘고전적 조건화’ 실험을 실시했다.

처음엔 그릇에 먹이를 준다. 먹이를 줄 때마다 계속 반복적으로 종소리를 들려준다. 종소리와 함께 파란 불빛을 비춰준다. 다음 2단계에서는 먹이가 없는 빈 밥그릇을 보여주고, 종소리를 들려주고, 파란 불빛을 비춰준다. 그러자 개는 어김없이 침을 흘렸다. 처음 먹이를 줄 때마다 반복적으로 종소리를 듣고 파란 불빛을 본 개는 반복적인 학습에 의해 먹이가 없는 빈 그릇을 보기만 해도, 종소리를 듣기만 해도, 파란 불빛을 보기만 해도 먹이섭취 본능이 자극돼 침을 흘리는 것이다. 바로 ‘조건반사’ 현상이다.

이후 소화선에 관한 연구로 러시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1904년 노벨생리학상을 받은 그는, 말년에 “나는 평생동안 내 실험에 희생된 강아지 700마리의 이름을 모두 기억한다”며 죄책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바로 요즘의 우리 모습이 딱 ‘파블로프의 개’ 꼴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먹을거리를 보여줄 때마다 울리는 종소리와 현란한 불빛쇼에 식욕을 주체하기 어렵게 하는 혼탁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인터넷과 TV에서 인기라는 소위 ‘먹방’(먹는 방송의 줄임말), 그 ‘먹방’에 ‘쿡방’(요리하는 방송)을 싸잡아 말하는 ‘푸드 포르노(Food porno)’가 그것이다.

‘푸드 포르노’는 1984년 영국의 저널리스트 로잘린 카워드(Rosalind Coward)가 자신의 저서 <여성의 욕망(Female Desire)>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음식 본연의 맛보다는 시각적인 자극을 선정적으로 극대화 해 이를 보는 사람들의 식욕을 자극시킨다는 뜻이다.
분명 무분별한 먹방·푸드 포르노 시청은 보는 이의 뇌를 자극시켜 불필요한 음식 섭취 충동을 느끼게 하고 식탐과 폭식을 가눌 수 없게 부풀린다. 게다가 먹방에 소개되는 음식들이 대부분 건강식이 아닌 고칼로리 음식일 뿐 아니라 튀김·라면·햄버거 같은 자극적인 정크푸드라서 무분별한 먹방 프로그램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현란한 색감과 관능적인 음향, 유명출연자들의 걸러지지 않은 거친 입담과 허황된 미사여구,그리고 억지춘향으로 과장된 연출… 등등 그 무엇하나 정서적으로 순화·정제된 것 없이 무한 충동적이고 자극적이다.
먹방을 여과없이 학습, 모방하는 것도 큰 사회적 문제다. “우리의 간식문화…” 운운하는 궤변은 또 무엇인가. 이 사회가 병들고, 우리의 서민 문화환경이 더 썩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정화시켜야 한다. 천민자본주의 정신에 함몰된 문화터전에서는 우리의 정신을 건강하게 살찌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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