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인터뷰 - 김인련 한국생활개선중앙연합회장

생활개선회 활동 60주년을 맞아 미래 100년을 이끌어갈 비전을 선포하고 재도약을 다짐한 생활개선회. 지난 11월2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기념식을 열어 단체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한 한국생활개선중앙연합회 김인련 회장으로부터 생활개선회 활동과 역할, 미래비전을 들어봤다.

 생활개선회는 10만 회원들 삶의 일부분
 개도국․북한 생활개선에도 적극 나설 것
 농촌여성신문과 도․농 활력화에 노력할 터

- 생활개선회는 어떤 의미인가?
결혼해서 첫 애 낳고 1년 지난 후부터 생활개선회 활동을 시작했으니 벌써 35년이나 됐고, 현재 중앙회장직도 맡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나에게 ‘생활개선회’는 정신이 번뜩 뜨일 정도로 머릿속에 박혀 있으며 내 삶의 일부다. 내가 그렇듯이 전국의 10만 회원들도 생활개선회가 자신들의 삶에 특별한 의미일 것이다.
농촌에서 농업인이자 가정주부로만 머물 수도 있었던 나를 바깥세상으로 이끈 것은 생활개선회다. 농촌여성들은 모두 힘들게 살았다. 하지만 회원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농사를 짓다 보니 생활개선회원이 된 것이 아니라 생활개선회 활동을 하다 보니 오늘날까지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 개인적으로도 생활개선회란 단체활동을 이어오면서 농촌에 정착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봉사가 어떤 건지, 삶이 얼마나 나아질 수 있을지 막막했었는데, 생활개선회 활동을 지속하면서 그 숙제를 찾을 수 있었던, 농촌생활의 어려움도 단체활동을 하면서 극복할 수 있었다. 단순히 농촌여성들이 일상에서 남편을 도와 농사를 짓고 가정주부로서 역할만 하다가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었던 게 생활개선회 활동이었다.
내 자신의 삶의 질 개선뿐만 아니라 주위의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농촌여성들이 생활개선회라는 테두리에서 함께 복지와 문화혜택 등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 생활개선회 발전에 농촌진흥기관의 역할도 컸는데….
생활개선회는 단순한 농촌지역의 계모임 같은 활동이 아니다. 농촌을 계몽하고 봉사하고 농촌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창구역할을 하면서 자신들의 손맛과 멋 등 숨은 끼를 이웃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60년 동안 최고의 단체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생활개선회가 6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회원들만의 힘이 아니다. 농촌진흥기관의 지도사들의 교육을 통해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면서 회원 간 끈끈한 정과 화합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매력 덕분에 60년을 이어올 수 있었다. 생활개선회가 다른 농촌여성단체와 다른 점은 교육을 받고 그 교육을 꼭 실천하고 이웃에 전파한다는 것이다.

생활개선회원이 있는 동네는 발전 속도도 빨랐다. 평소 외출한다고 하면 시어머니가 뾰로통하셨는데, 농업기술센터에 간다고 하면 얼른 다녀오라고 말하셨다.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산물로 병조림을 만들어 대접하고 개량메주 만드는 법도 배워오니 흔쾌히 보내주신 거다.
이런 생활개선회가 농촌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농촌여성들이 생활을 개선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에 가능했다. 단지 모여서 밥 먹고 수다 떨고 집안 돌아가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농업기술센터에서 실생활 개선에 필요한 뭔가를 배워서 갔다. 그래서 회원들 집에 가면 뭔가 달랐다.
당시 농촌지도소(현 농업기술센터)에 아이를 업고 과제교육을 받으러 가면 지도사들이 교육시간 동안 아이를 돌봐줬다. 농촌 탁아소사업이 활성화되는 계기였던 것 같다.

농업기술센터에서 가공기술 배웠던 것이 CEO로 나설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됐다. 농촌진흥청의 농촌여성일감갖기 사업을 통해 농촌여성들의 손맛에 농업기술센터에서 배운 가공기술이 보태져 사업화 한 것이다. 사업을 하면서 농촌여성들이 통장을 갖고 경제력을 갖게 됐고, 본인들의 지위를 높일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이 배우고 익힌 가공기술을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는 강사가 될 수 있었다. 농촌여성들이 남편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남편들도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는 계기가 됐다.

- 이제 배움을 나눠줄 때다.
올해 생활개선회는 캄보디아 농촌마을과 교류활동을 펼쳤다. 그동안 선진농업국을 위주로 해외연수를 다녀왔지만, 올해는 우리 회원들이 그 동안 배우고 갈고 닦은 생활개선 활동을 캄보디아 농촌마을 부녀자들에게 전수해주고 온 것이다. 편리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회원들이 캄보디아의 실상을 통해 자신들의 예전 어려웠던 생활상을 되돌아보며 배움을 나눠 그들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주기로 다짐했다.

이번 교류활동은 1회성에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다. 이를 위해 생활개선회 해외연수는 선진지 견학과 개발도상국 교류 등을 번갈아 가면서 할 계획이다. 중앙회 차원뿐만 아니라 지방연합회도 이러한 활동을 하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이 같은 활동은 남북통일에 대비해 북한 농촌마을 생활개선에 우리 생활개선회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단계로 생각하고 있다.

- 시대변화에 따라 생활개선회의 역할도 변해야 하는데….
생활개선회가 그 동안 내실을 다지는데 역점을 뒀기 때문에 외부적으로 크게 알려지지 못한 부분이 있다. 농촌을 계몽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단체라서 관계기관으로부터 지도를 받는 수혜자였다. 지역 형편에 맞게 나름 농촌여성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활동을 했고, 우리가 배웠던 것을 주위에 나누며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해왔다. 이를 통해 도시민에게 농업·농촌의 소중함을 알리는데 노력해왔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생활개선회가 뭘 하는 단체이고 정체성이 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건강과 먹거리를 책임지며 지금까지 왔는데, 회원들도 정작 우리 단체의 정체성을 잘 모르고 있다. 정부에서 농업·농촌, 그리고 여성농업인을 위해 농가도우미, 행복바우처, 교육도우미 등의 여러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현장의 농촌여성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뭐가 필요한지 여성농업인 관련 정책을 발굴하고 정부에 제안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달 국회에서 개최한 여성농업인 정책 발굴 토론회가 바로 그것이다. 현장의 여성농업인들도 이제 적극 목소리를 내고, 생활개선회도 그런 흐름에 발맞춰 나갈 계획이다.
이러한 모든 활동의 중심이자 10만 회원의 보금자리가 될 농촌여성회관 건립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올 겨울 설계가 마무리되면 내년 봄쯤이면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 생활개선회 미래비전은?
올해 60주년이 된 생활개선회가 앞으로 100년을 어떻게 설계해 나아갈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생활개선회가 우리 농촌이 발전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는 자부심으로 앞으로도 농촌을 활성화시켜 경제발전에 디딤돌이 되도록 하겠다. 농촌사회가 안정돼야 국가경제도 발전한다.
우리 국민의 건강을 생활개선회가 책임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국민이 건강해야지만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고, 그 원동력은 생활개선회다. 생활개선회가 품고 있는 농업·농촌, 국민 먹거리도 중요하지만 우리 농촌의 전통문화, 전통먹거리를 전파하는 역할도 계속 이어가겠다. 농촌관광을 통해 국민들이 힐링하고 치유토록 하겠다.

국민을 위해 건강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은 생활개선회가 없으면 힘들다고 본다. 그것이 우리 단체의 정체성이다.
앞으로 100년을 더 이어가려면 60년 동안 선배들이 해왔던 것을 밑거름 삼아 잘 계승·발전시켜야 한다. 농촌여성신문이 생활개선회와 함께 100년을 바라보면서 농촌에 숨어있는 이야깃거리를 찾아 소개해 도시민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신문이 되고, 농촌과 도시가 같이 뛰어놀 수 있는 장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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