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동 시인․칼럼니스트

"농산물이 물가 앙등의
주범인 양 손가락질하는
공직자들의 생각 바뀌어야…

농업인은 늘 과묵하다.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다.
화난 농심이 되지 않게
구곡 방출 반드시 철회해야"

▲ 김훈동 시인․칼럼니스트

한 알의 쌀 속에 얼마나 많은 농업인의 땀이 배어 있는가? 쌀 한 톨을 생산하려면 농업인의 손길이 여든 여덟 번 간다는 뜻으로 쌀 미(米)자를 만들었다는 게 통설이다. 밥그릇으로 캐리어(career)를 따지는 것도 쌀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밑바닥에 깐 것이다. 농업이 망하면 농촌만 망하는 것이 아니다. 숨 쉬고 살아가는 환경도 망하고 나아가 우리의 얼도 망가진다. 세월 따라 사람들의 식성도 변했다. 아무리 변하고 소비가 줄었다지만 쌀은 여전히 “우리의 모든 것”이라는 조상들의 말씀이 살아있다. 그런데 수확기만 되면 농촌과 농업인의 목이 점점 죄어드는 게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정부가 물가를 잡겠다고 쌀값을 떨어뜨리는 정책을 펼치기 때문이다. 소비자 물가인상이 농산물 가격이 오른 탓이라며 2017년산 정부 재고 쌀 5만 톤을 공매로 시중에 방출하겠다는 물가관계차관회의 발표다. 도대체 농업인을 살리려는 것인지 죽이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물론 쌀 목표가격 결정은 물가와 농촌경제 보호라는 양면성이 있다. 하지만 한 해 사상 유래 없는 폭염과 가뭄, 장마 등 이상기후를 극복하고 수확을 걷은 농업인들이 한 숨 돌리고 희망을 갖게 해도 부족할텐데 농업인의 분노를 돋우고 있는 정책을 펼치려 한다. 수확의 기적을 확신하면서 땀을 흘린 농업인을 생각한다면 구곡 방출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 요즘 농촌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적정이윤 보장을 통해 농업인에게 희망을 줘야 할 때가 아닌가. 이윤이 높은 농사가 아니라는 것쯤 모두가 익히 안다. 거기에 목을 매고 살아가는 농업인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이럴 수는 없다.

산지 쌀값이 지난해에 비교하면 다소 올랐다. 몇 년째 하락하던 쌀값이 겨우 회복세를 보일 뿐인 것이다. 이것도 정부가 과잉물량 시장격리 조치 때문이다. 올해도 쌀이 9만 톤 가까이 과잉 생산될 것으로 보인다. 어렵사리 회복된 쌀값이 다시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소리도 들린다. 올해도 수치상으로 쌀 수급안정을 위해 과잉물량을 시장에서 격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쌀값 하락 우려 속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비축미 5만 톤 공매가 굳이 필요한 것인지 재고하기 바란다. 더욱이 쌀 목표가격도 여야 간에 80㎏기준 19만6000원부터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상당한 진통을 겪을 듯하다. 정부여당이 제시한 가격과 야당·농업인단체가 요구하는 가격과는 격차가 커 협상이 수월하게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농업계 의견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국회 시정연설에서 “쌀 목표가격에 물가상승률이 반영되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물가를 잡겠다고 2017년산 구곡방출에 대해서 “역대 어느 정권도 수확기에 쌀값 안정을 빌미로 비축미를 방출 한 적이 없다.”, “농업인의 고통은 안중에 없고, 지나친 농업인 홀대정책이다.”, “물가상승은 쌀값이 주범이라는 그릇된 여론만을 믿는 잘못된 정책이 문제다.” 라면서 농업인단체들도 주먹을 불끈 쥐고 일제히 성토에 나섰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경대수 의원은 “정부가 수확기에 쌀 5만 톤을 방출해 쌀값을 하락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포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재 의원도 “구곡을 방출하지 않겠다는 점을 농식품부 장관이 명확히 해 달라.”고 강도 높게 요구했다.

쌀 등 농산물이 물가 앙등의 주범인 양 손가락질하고 있는 공직자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농업인은 늘 과묵하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하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화난 농심(農心)이 되지 않게 구곡 방출 정책을 반드시 철회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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