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46)

▲ 유니섹스 스타일

남성도 여성도 아닌
옷을 입고 치장했다고
진정한 양성평등이
이루어질지 의심스럽다

영국 BBC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남자아이에게 원피스와 형광 주황색 카디건을 입히고, 여자아이에게는 파란색 체크무늬 셔츠와 바지를 입힌 뒤 어른들이 어떻게 놀아주는지를 살펴봤다. 어른들은 원피스를 입힌 아이에게는 인형을 가지고 놀아줬고, 바지를 입힌 아이에겐 자동차와 블록을 건넸다 후에 실제 아이의 성별과 이름을 알고 난 어른들은 자신들이 성별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남아·여아를 옷으로 구분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충격에 빠졌다.

21세기 들어 패션업계에서 ‘성 중립’ 또는 ‘젠더리스(genderless)’가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젠더리스란 ‘남자 또는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식의 태도를 버리는 것이 핵심이다. 한마디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개념이다.

오랫동안 남녀의 구분은 사회적으로나 패션에서나 매우 엄격했었다. 옷이나 화장품이 남성용, 여성용으로 구분 생산됐고, 백화점들은 아예 남성복 매장과 여성복 매장 층을 달리 배치했다. 그러나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여성 해방운동과 함께 유니섹스(Unisex)라는 개념이 확산되면서 그 구분이 허물어져가고 있다. 유니섹스패션에서는 청바지와 후드티셔츠같이 성 구분이 없는 스타일이 유행했다. 아울러 남성의 넥타이를 한다든가, 치마를 버리고 바지를 선택하는 여성들이 늘어갔고, 남자의 전유물이었던 수트를 여성 패션에 적용시키며 남녀평등을 과시했다. 그러나 근본적 성평등을 이끌어내기보다는 패션과 헤어스타일 등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에서의 남성 패션을 따라했다. 그렇게 남녀 차이를 줄이는데 그쳤다.

유니섹스는 21세기가 되며 젠더리스로 이어졌다. 젠더리스 패션은 70년대에 여성들이 무조건 남성복 스타일의 옷을 입었던 유니섹스 패션과 달리, 남성들이 여성의 패션을 따르는 경향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성 역시 남녀 구분이 안 되는 패션을 따르지만, 남성이 귀고리를 하고, 치마를 입는가하면, 여성과 똑같은 향수를 사용하며 눈썹을 그리고 같은 색의 루즈를 칠하는 등 여성과 구분되지 않는 화장까지 한다. 이를 반영하듯 국내 남성화장품 시장 규모가 1조2808억 원을 기록했다고 한다. 유난히 예쁜 남성이 많은, 한국 남성의 1인당 화장품 구매액도 세계 1위이며 2위인 덴마크에 비해 4배에 달한다고 했다. 시대의 흐름을 선도해가는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남성복 패션쇼에 여성이 모델로 등장한 일도 있었다.

즉 젠더 자체가 없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통합시켜 양성의 성을 표현하거나, 남성과 여성의 구분 자체를 지우고, 남녀를 그냥 하나의 사람으로 인정할 뿐이라는 흐름이다.
어쩌면 남녀의 가름은 오랜 관습이 만들어낸 사회 규범이고, 강한 남성에 의해 억압 받아온 인권 유린의 한 자락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긴 세월동안 남존여비(男尊女卑)로 여성을 옥죄던 이 땅에서, 양성 평등이라며 여자처럼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남성들을 우리의 조상들이 바라보게 된다면 어떤 표정일까. 남성도 여성도 아닌 옷을 입고 치장을 했다고 진정한 양성평등이 이뤄질지도 의심스럽다. 적어도 아직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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