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제때 자기 일을 발견하고
애쓰며 이뤄나가는 것이
최고의 삶이 아닐까…

새벽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안개가 중얼거리며 뿌옇게 뒤통수를 보이면서 사라진다. 오전 6시45분. 해가 뜨는지 사방이 환하다. ‘이슬에 젖었을 때 들깨를 베야 한다는데, 지금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며칠 전부터 미뤄둔 가을걷이를 마무리 하느라 둘 다 피로로 온 몸이 말랑말랑해져 있는 상황이라 방에 들어가 눕고 싶어 하는 남편에게 눈치껏 말을 건넨다. 남편은 잠시 머뭇거리며 따뜻한 장판에 등을 대는 듯하더니 벌떡 일어나 나간다. “개밥부터 주고 일을 시작해야겠어.”라며. 나는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남편과 나는 연애시절부터 성격이 무척 달랐다. 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교편생활을 할 때, 남편은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해서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때 나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도 남편을 통해 처음 알았다. 결혼 후 생활하면서도 나는 경상도 여자, 남편은 충청도 양반, 나는 첫째이고 B형, 남편은 형제 중 막내이며 AB형, 매사에 나는 앞전이고 남편은 뒷전, 둘이 부부싸움도 많이 했지만 다혈질이며 성질이 급한 나는 싸움에 번번이 졌다. 나이가 들면서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둥글어져 왔다. 그러나 시골에 내려와서도 일하는 방법, 태도, 마음가짐 역시 나와는 달라서 참 많이 부딪쳤었다.

올해 들어 이번에 제일 큰일은 부모님 산소를 선산에서 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하는 일이었다. 봄에 시작해서 이달에 끝이 났으니 거의 6개월간 치러낸 일이었다. 큰 형님이 살아계실 땐 꼬박꼬박 성묘도 하고 산소관리를 해왔지만 몇 년 전에 돌아가시고 나니 우리가 봄가을로 소풍 겸 가서 벌초하고 돌아보는 것 외에는 찾아보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막내인 우리 나이가 예순 중반을 넘겼으니 위로 형제들은 모두 상노인이라 산중 선산에 있는 부모님의 산소를 찾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독립유공자인 부모님의 산소를 대전 현충원으로 모시자고 했다.

결국 막내인 남편이 유족대표로 이 일을 맡았다. 먼저 할 일은 시작이다. 청주 보훈청에서 수 십 장의 서류를 받아 장손으로부터 형제, 친척들에게 동의서를 받고 증빙서류를 갖춰 보훈청에 제출했다. 두어 달 남짓 현충원의 심사기간을 거쳐 허가통보가 왔다. 고향인 양산면에 개장신고를 하고 업체를 통해 남편의 지휘아래 이장과 화장을 진행했고, 약속된 안장식 날(10월2일)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5묘역에 안장했다.

다음 날 눈뜨자마자 남편이 꿈 이야기를 한다. 새벽녘에 아버님, 어머님을 봤는데, 부모님을 모신 현충원 그 자리에 아버님은 하얀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곁에 어머님도 환한 얼굴로 편안하게 서 계시더란 것이다. 평생 부모님을 꿈에 본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데, 남편도 내심 놀랐던 모양이다.
결혼 후 집안 대소사에 남편의 역할이 거의 없었다. 남편은 형제의 쫑말이(막내)이라는 말을 듣고 자라왔는데, 그것이 책임지지 않는 사람, 책임질 일이 없는 사람으로 키워진 것은 아닐지. 나는 처음에 그런 남편을 보고 “막내도 인간이냐?”라며 놀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해 남편은 막내에서 어른으로 변화된 것 같다.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두려움 없이 해치우고는 “속이 시원하다.”라고 한다.

스스로 변화하지 못하면 아무도 당신의 운명을 개선시켜주지 못한다고 빌 게이츠가 말했던가! 때가 돼도 변하지 못하면 썩고 변질될 뿐, 자신에게조차 실망하게 된다. 제때 자기 일을 발견하고 애쓰며 이뤄나가는 것이 최고의 삶이 아닐까! 이번 일을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남편을 보며 존경과 박수를 보내며, 날마다 한걸음씩 더 좋게 변화되기를 기대한다. 깊어가는 가을 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이 더욱 햇살에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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