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65)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단순 호기심 하나로 날린 풍등 하나가 저유소 휘발유 260만ℓ를 태우고 무려 43억 원의 피해를 냈다. 이 풍등을 날린 스물 일곱살의 외국인 노동자에겐 그가 빌던 행운 대신 방화범이라는 벌이 내려졌다. 그가 이 낯선 이국땅에서 간절히 빌었던 행운은 무엇이었을까.

풍등은 종이풍선에 촛불을 켜서 열기구처럼 풍선 안의 공기를 데워 하늘에 띄우는 등이다. 중국에서는 새해맞이로 성공과 복을 기원하며 띄운다 하여 ‘소원등’이라고도 한다. 또한 저 중국의 삼국시대에 촉한의 재사 제갈공명이 처음 발명했다고 해서 ‘공명등’이라고도 부른다. 공명등 고사는 이렇다. 촉한이 평양현에서 사마 의에게 겹겹이 포위되었을 때, 성을 빠져나가기 위해 외부에 알릴 방법을 궁리한 제갈공명은 자신의 모자와 비슷하게 생긴 풍등을 만든 다음 구조요청 쪽지를 매달아 칠흑같은 야밤에 성 밖으로 날려보낸다. 결국 제갈공명과 촉한군은 구조를 받아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다.

같은 중국이지만 대만에서는 풍등을 ‘천등(天燈)’이라고 부르며, <핑시천등축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 등축제는 험한 산악지대에서 일하던 옛사람들이 등불을 하늘 높이 띄워 올려 가족들에게 자신의 안전을 알리던 데서 유래했다. 그래서 이 등축제 때에는 많은 지구촌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등에 적어 하늘 높이 띄워 보낸다.

이 풍등놀이는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경남지방에서는 오래 전부터 <등싸움 놀이>라는 이름으로 동짓날 민속놀이로 행해졌다. 동짓날 저녁에 서당의 생도들이 이웃 서당 생도들과 등불을 가지고 각각 진을 짜 힘을 겨루는 놀이로 ‘등싸움’ 혹은 ‘초롱쌈’이라고도 한다. 이때 싸움의 신호로 올리는 것이 대나무와 한지로 만든 풍등이다. 이 놀이가 임진왜란 때는 군사훈련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민속놀이는 현재 경남 통영에서 해마다 열리는 <한산대첩축제>에서 부분적으로 변형돼 전승되고 있다. 옛날처럼 두 패로 나뉘어 힘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어느 동네 풍등이 가장 높이 공중에 올라가고, 오랫동안 떠 있느냐 하는 것으로 승부를 가린다.

그밖에도 여러 지자체들이 앞다퉈 가며 풍등축제를 연다. 그리고 예전엔 둥근 보름달을 보며 두 손 모아 빌던 소원들을 이제는 공중에 두리둥실 떠올라 밤하늘을 현란하게 수놓는 풍등에 비는 세태다.
그렇게 누구나의 소망들을 품어 안던 풍등이었거늘, 저유지에 불시착한 풍등은 제대로 날아오르지도 못하고 저유지 관리의 허술함과 그 많은 불편한 진실들 만을 통째로 알려준 것만 같아 왠지 씁쓸하기만 하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