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코오롱등산학교 이용대 명예교장

기상관측 이래 가장 혹독한 더위를 겪었던 여름을 보내고 시원한 바람이 옷깃에 스며드는 등산시즌을 맞아 코오롱등산학교 이용대 명예교장을 만났다.
이 교장은 60년 가까이 국내외 높은 산을 오르는 산악인이다. 1985년 코오롱등산학교 개교 후에는 대표강사와 교장을 지냈고, 2015년 퇴직 후에도 등산교육 출강에 분주하다. 그는 또 산악인이 된 뒤 쉬지 않고 칼럼을 쓰고 산에 관한 책을 7권이나 펴냈다. 국내외 산악서적에 대한 서평(書評)도 종종 쓴다.
한국 산악계의 보배 같은 ‘등산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 교장으로부터 산에 관련된 재미난 얘기를 들어봤다.

 산에 오르는 것은 삶의 궤적과 같아
 산 정상에 올라 얻는 만족과
 성취감에 매료되기 때문에 또 오른다

등산과 산 관련 글쓰기, 강의
병행해야 진정한 ‘산악인’
백발에도 등산과 집필에 열정

먼저 산악인이 된 계기부터 들었다.
“저는 중앙대 법대 재학 중 판검사가 되려고 사법고시 공부를 했지만 고배를 마시고 말았죠. 그러던 중 1965년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북한산 인수봉 암벽을 타자고 해 따라 갔어요. 당시 부실한 장비로도 정상 등반에 성공을 했어요. 암벽등반의 감동과 쾌감은 사시에 대한 꿈을 접게 했고, 나를 체신공무원으로 만들었습니다. 한국통신이 생기면서 그쪽에서 일하다가 1995년 퇴직할 때까지 휴일마다 산에 올랐습니다. 산에 오르고 난 뒤면 글을 썼어요. 산악관련 책도 부지런히 모아 2천여 권의 산악서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교장은 1997년부터 산악회보에 글을 쓰는 것을 시작으로 지금껏 많은 글을 쓰고 있다. 월간 ‘山’을 비롯한 등산잡지와 중앙일보, 한국일보 등 여러 신문에 칼럼을 투고했다. ‘등산상식사전’은 월간 ‘山’에 14년 넘게 연재한 칼럼을 하나로 묶은 책이라고. 그는 ‘그곳에 산이 있었다’ 등 7권의 책도 냈다.
이 교장은 산악인이 땀과 피로 산을 오르는 등산과 머리로 하는 글쓰기, 그리고 강의를 병행해야 진정한 산악인이라며 법조인이 되는 것보다 산악인으로 산 것에 긍지를 보였다. 이 교장은 80을 넘겨 흰서리가 내린 백발노령에도 산을 오르고 한 달 400여 매의 글을 쓴다고 한다.

“정상은 선택, 하산은 필수”
정상에 올랐다가 무사귀환해야

“산에 오르는 것은 우리 삶의 궤적과도 같아 험한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평탄한 길이 닿는 내리막길을 타는 것이라고 봐야지요. 영국의 유명산악인 조지 핀치는 ‘등산은 스포츠가 아니라 삶의 한 방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등산은 도전의지로 정상에 올라 얻는 만족과 성취감에 매료되기 때문에 다시 또 산에 오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올바른 등산의 완성은 정상에 올라 이를 반환점으로 삼아 무사히 살아 돌아오는 겁니다. 등산에서 정상은 선택이고 하산은 필수입니다.” 
이어 이 교장은 설악산은 사계절 각기 특이한 경관을 보여주는데다가 국내 최대의 암벽과 빙벽이 있고, 적설등반 뒤 평탄한 길을 내주는 드라마틱한 산이어서 산악인들이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개방된 설악산의 토왕성폭포의 절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고 강조했다.

세계최고 등산강국은 영국
아시아 1위는 일본 제친 ‘한국’

이 교장은 세계적으로 최고의 등산강국은 영국이라고 했다. 영국은 근대등반의 성지가 된 4470m급 마테호른과 몽블랑을 처음 올라 등산 황금시대를 열었다고.
이 교장은 “최근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 초청된 세계적인 유명 산악인인 크리스 보닝턴 경은 에베레스트 남서벽과 안나푸르나 남벽 루트를 개척해 영국왕실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어요. 영국의 이 같은 산악인 예우가 부럽기만 합니다.”
한편, 일본은 7000m급 등반에 성공할 때까지 아시아권 1위 등산국가였지만, 한국이 8000m급 등반에 속속 성공하면서 이제는 우리가 아시아권 제일의 강국이 됐다고 말했다.

“산악인 중 8000m 이상의 히말라야 14좌를 등정해낸 사람은 한국인이 최다인 7명입니다. 엄홍길, 한왕용, 김재수, 김미곤, 작고한 김창호·박영석과 여성산악인인 오은선이죠. 이중 올해 만 49세인 김창호 대장은 5400m 베이스캠프에서 출발하지 않고 인도 해안의 해발 0m에서 등반을 시작하고, 무산소로 8000m급 산 14좌를 모두 올라 세계적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알피니스트입니다.”
이런 등반기록으로 세계적인 등산인이 된 고 김창호 대장이 지난 10월12일 새 등산로를 개척하려고 구르지히말 난벽을 등반 도중 베이스캠프에서 눈폭풍을 만나 목숨을 잃었다며 이 교장은 무척 애통해 했다.

한편, 이 교장은 코오롱등산학교에서 가르쳤던 애제자인 여성산악인 고미영이 히말라야 등반 중 추락사한 것에 대한 아픔이 크다고 했다.
“고미영은 히말라야 14좌 중 다섯 번째로 높은 8236m 마칼루 등반을 마치고 2009년 7월 낭가파르바트 8126m고지 하산길에 잡아야할 고정로프가 잘여진 것을 모르고 잡으려다 불의의 참변을 당했어요. 이런 불상사로 애제자 고미영을 잃은 것 또한 애통하기 그지없습니다.”

코오롱등산학교 교장으로 30년 근무
1만8000명 산악인 배출하며 저변확대

이어 코오롱등산학교에 대해 알아봤다. 코오롱등산학교는 코오롱그룹 산하 코오롱스포츠가 생산해내는 아웃도어와 레저·스포츠용품 판매로 얻은 수익을 산악계에 환원하기 위해 1985년 문을 열었다.
이 학교에선 등산 초보자를 대상으로 한 기초반과 전문산악인을 육성하는 정규반 등 6개과정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데, 개교 이후 지금까지 1만8천여 명의 산악인을 배출해냈다고 한다. 요즘엔 법조인, 의료인, 출판인 등 사회저명인사가 많이 교육에 참여해 산악계의 저변확대와 발전에 기대가 크다고 이 교장은 말한다.

1990년 우르과이라운드에 항의해
이 교장이 선물한 나이프로 할복한
농민 이경해는 등산 애제자

이 교장은 1990년 스위스 제네바 가트(GATT) 본부에서 진행 중이던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 항의하며 주머니칼로 할복자살을 기도했던 이경해 씨와 함께 했던 등산 비화를 공개했다.
이경해 씨는 서울시립대 졸업 후 고향인 장수에서 산지 5만 평을 개간해 고랭지채소 재배와 젖소 75마리를 키웠다. 그는 제2대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을 지냈고, 한국농어민신문을 창간했다. 그리고 FAO가 주는 ‘세계농부상’도 타낸 농민운동의 거물이었다.

이 교장과 이경해씨는 에베레스트 등정의 꿈을 품고 대학산악활동 중 만났다. 수락산 금유폭포와 설악산 토왕성폭포 등지에서 이 교장은 선등자(先登者)가 돼 그의 등산을 이끈 지도자였다.
이경해 씨가 지니고 있던 칼은 이 교장이 쓰던 칼로, 이경해 씨에게 귀농 기념선물로 내준 스위스제 아미나이프였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학교 창밖으로 보이는 북한산 인수봉을 가리키며 “얼마나 올랐느냐?”고 물었더니 1000번 이상 올랐다고 이 교장은 말했다.
끝으로 이 교장은 “여성등산인이 늘어 반갑다.”며 휴일에 부부가 함께 산에 올라 활력이 깃든 삶을 살아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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