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44)

다른 이와 똑같기를 거부하고
기존의 미에 대한 개념도
그녀는 깡그리 무너뜨렸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백세 시대를 멋있게 달리고 있는 영국  출신의 여성 디자이너다. 80을 바라보는 나이(1941년생)에도 세계적 명성과 부를 창출하고 있다. 수명이 짧은 패션계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다.
그녀는 등장부터 남달랐다. 가난해서 원하던 예술 공부를 접고, 안정된 직업인 초등학교 교원이 됐다가 어느 날 갑자기 패션 디자이너로 전업을 했다.
뒤늦게(1971년) 자신이 원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당시로서는 이해하기조차 힘든 ‘펑크패션’에 열정을 쏟았고, 마침내 영국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가 됐다. 그리고 ‘펑크 패션 여왕’의 자리를 차지했다.

펑크 패션이란 ‘풋내기, 시시한, 쓸모없는’의 뜻을 가진 punk에서 비롯된 말이다. 반항적이고 공격적이며 기존의 질서와 권위를 무시한 길거리 부랑아들의 패션이다. 모히칸 헤어스타일(머리좌우를 바싹 깎고 가운데만 남겨 마치 닭벼슬처럼 보임)에, 핑크나 녹색으로 염색하고 야한 화장을 하며, 면도칼, 죄수들을 묶는 사슬 같은 것들을 액세서리로 치장한다.
너덜너덜 찢어진 청바지나 이상한 소재의 바지에, 가죽 상의 또는 나치나 해골 무늬의 셔츠를 걸치는 등 더럽고 혐오스러운 차림이 특징이다. 이 기상천외한 패션의 출발점에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있었다.

1971년 런던의 킹스로드에 그녀의 연인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과 옷 가게를 열고 기상천외한 옷과 장신구를 팔았다. 말콤 맥라렌은 기성세대의 문화를 비웃으며 성과 마약을 하는 당대의 전형적인 반항아였으나 패션을 사랑한 멋쟁이였다. 웨스트우드는 그의 영향으로 전통 질서에 도전적 태도를 갖게 되고 이를 패션에 표출하는 능력을 배우게 된다.
그 무렵 말콤 맥라렌은 펑크 록 그룹인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매니저였다. 이 록 그룹은 맥라렌 못지않은 문제아들로, 음악이라기보다 마치 음치들의 광란 같은 괴성으로 악을 쓰고, 생방송 중에 욕을 하는 등 희대의 막장 짓도 서슴없이 해댔다.

물론 영국인들은 이들을 멸시하고 조롱했다. 그러나 어느 틈엔가 당시 허세와 기교 중심으로 흐르던 록 음악계에 록의 근원을 다시 생각하도록 했다는 평가와 함께,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흠모하는 전설의 펑크 록 밴드로 자리 잡았다. 더불어 이들의 의상을 맡았던 맥라렌과 웨스트우드의 옷도 붐을 타며 ‘펑크패션’이라는 확고한 위치를 확보 할 수 있게 됐다. 괴상망측하고 추한 저것들도 옷이냐며 야유하던 사람들이 서서히 따라 입었을 뿐 아니라 펑크패션 등장 이래 반세기동안 끊임 없이 유행을 이끌고 있다.      

그녀는 다른 사람과 똑같기를 거부한다. 허세에 찬 기존의 질서 대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그것을 과감히 만들어낸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던 기존의 미(美)와 추(醜)에 대한 개념도 깡그리 무너뜨렸다. 현대인의 무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는 바로 그 원초적인 ‘나’에 대한 외침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녀는 영국 패션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영 제국의 작위급 훈장까지 수여 받았다.
펑크패션으로 그것을 가르친 그녀의 삶이 백세 시대를 살아야 할 우리에게 던지는 큰 외침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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