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허성(許筬)의 잣대가 그립다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본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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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12  11: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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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대박’이라던
대통령의 한마디에
함성을 질러대던 사람들이
지금은 통일이 될까봐
가슴 조이고 있는 듯하다.

진영논리는 안 된다고 믿었던
400년전 허성의 소신과 잣대가
오늘날까지 울림으로 남아있다.

   
▲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본지 칼럼니스트

서인인 황윤길은 “풍신수길의 빛나는 눈빛이 담과 지략이 있어 보여 필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동인인 김성일은 “풍신수길의 눈은 쥐와 같아 두려워 할 위인이 못 된다”며 일본(왜국)의 침략은 없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임진왜란 1년 전, 조선 임금 선조가 일본 사정을 알아 오라며 파견한 통신사들이 돌아와 그렇게 상반된 의견을 아뢰었다. 동인이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서인과 팽팽히 맞서있던 때였다. 따라서 김성일의 견해는 일사천리로 동인 진영의 의견으로 확정됐고, 국론도 그렇게 일본 침략이 없으리라는 쪽으로 기울었다. 유성룡이 가까이 지내던 김성일에게 정말 침략 가능성이 없느냐고 따로 물었다. “나도 어찌 왜적이 침략하지 않으리라고 단정하겠습니까?” 그도 왜적의 침략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으나, 서인인 황윤길의 반대쪽에 서야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나라의 안위나 국익은 안중에 없었다. 오직 사사로운 당파의 이익과 진영의 논리가 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1592년 왜란은 일어났다. 못난 임금 선조는 백성과 도성을 버리고 북쪽으로 줄행랑을 쳤다. 꼭 그것 때문만이라고 말 못해도 잘못 굴러간 진영 논리는 이 땅을 그렇게 망가뜨려 놓았다. 그나마 왜군을 저지하고 괴롭힌 것은 의병들이었다. 사사로운 집단이익을 추구하는 진영 논리는 그렇게 나쁜 결과를 만들어 냈다.

최근 왈가왈부하는 남북관계를 보면서 바로 그 진영논리를 생각하게 된다. 누가 뭐래도 올 들어 이뤄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은 이 나라는 물론 세계인들의 뜨거운 찬사를 받은 특급 이벤트였다. 으르렁대던 남북의 정상들이 서로 포옹하고, 남측 대통령이 15만 평양시민들을 향해 평화롭게 함께 살자고 연설하는가 하면, 백두산 천지에 오른 두 사람이 파안대소하고 서로 잡은 손을 치켜들어 올리기도 했다. 그야말로 감동적인 장면들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은 남북 어느 한쪽이 상대방을 타도하거나 항복케 해 소멸시킬 수 있는 시점이 아니다. 서로 존재를 인정하고 상대방을 ‘관리’해가면서 통일을 모색해 가는 게 최선의 길이라고 보는 견해들이 많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오랫동안 남북 간의 긴장관계를 정권 연장의 수단과 상대진영 탄압 수단으로 악용해 왔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을 지탱해준 그 진영논리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은 좌익들만 찬성하는 회담”이라거나 “남북합작의 위장 평화 쇼”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의 이적행위”에, “곤경에 처한 문 대통령을 구해주기 위한 김정은 위원장의 배려”라고도 했다. 오죽하면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어’ 이 나라에 평화가 찾아오고 통일이 되면 큰일이라고 걱정하면서, 남북관계가 꼬이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것 같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4년 전 “통일은 대박”이라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한마디에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질러대던 사람들이, ‘바로 그거’라고 맞장구치며 시리즈 기사까지 연재하던 언론들이 거꾸로 지금 통일이 될까봐 가슴 조이고 있는 듯하다.

임진왜란 직전 동인 김성일·서인 황윤길 일행과 함께 일본에 갔던 허성(許筬)이라는 젊은 종사관이 있었다. 그는 김성일과 같은 동인이었으나 임금 앞에서 감히 “침략 가능성이 있다”고 ‘직고(直告)’를 한다. 때문에 진영에서 심한 ‘왕따’를 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에게는 기개가 있었다. 유명한 여류시인 허난설헌과 홍길동전을 쓴 허균이 그의 동생이었다. 진영논리는 안 된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그의 소신과 잣대는 4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울림으로 남아있다. 허성(許筬)의 잣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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