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생활개선회
배고픔 해결에서 시작해 웰빙 먹거리까지~■ 우리 농업농촌 발전의 견인차 생활개선회- 생활개선회 60년…먹거리, 영양개선, 농식품 가공 어떻게 변해왔나?
이명애 기자  |  love8798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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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27  15:2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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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생활교육차가 FAO를 통해 지원돼 농촌오지마을에도 식생활교육이 이뤄졌다.(1979년)

농촌에서 굳세게 삶을 이어오며, 우리네 먹거리 생산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영양개선으로 대표되는 현대 식생활 발전에 앞장서고 손이 닳도록 우리네 전통의 맛을 지켜냈다.
생활개선회... 농촌의 여성이자 아내이자 어머니고 누이로 바른 먹거리를 직접 생산하고 올바른 식생활 문화를 선도하며 국민의 건강 증진에 이바지해온 농촌여성들이 주도한 식생활발전의 역사다.

농촌영양·식생활 개선 실천, 국민건강 증진에 일익 담당
향토음식 개발과 농촌자원 이용한 농촌융복합산업 발전까지 큰 역할

■ 1958년~1976년

절대 궁핍의 농촌생활에서
감자 고구마요리로 식량부족 해결

개량메주와 토끼요리로
불균형한 식생활 개선까지

생활개선회의 전신인 생활개선구락부는 1958년에 탄생했다.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의 의지는 불타올랐다. 청년들은  4-H구락부로 뭉쳐서 학습활동을 하고 농촌계몽에 앞장섰다. 농촌여성들도 궁핍에서 벗어나고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한 배움을 위해 뭉쳤다. 생활개선구락부는 이렇게 각종 교육에 능동적으로 참가하려는 농촌여성들의 자생적 모임이었다.

그 시절 생활개선구락부원들은 사시사철 담글 수 있는 개량메주 만드는 방법을 농사원(현 농촌진흥청) 소속의 가정교도원(현 농촌지도사)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전국 가정교도원들 역시 각 시군에서 생활개선구락부원들을 지도하며 농촌지역의 영양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힘썼다.
“반찬이라곤 된장뿐이었는데 기존 메주는 담그는 철이 정해져 있어 언제든지 된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개량메주 만들기가 꼭 필요한 사업이었다”는 게 농촌생활발전중앙회 정금주 고문의 말이다.
정금주 고문은 대학 졸업 후인 1967년부터 줄곧 농촌에 영양개선 사업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열정을 바쳐왔다. 
 

   
▲ 잉여농산물을 이용한 병조림 교육은 회원들에 인기가 높았다.

■ 1977~1990년대

쌀 소비절약 앞장

응용영양시범마을 선정해
농촌영양개선사업 진행

과학적 식생활 보급과
병조림 등 가공기술 전파

1970년대는 식량증산에 총력을 기울이던 때다. 또 농민들의 건강 증진과 농번기 공동 취사장도 만들어지며 영농철 바쁜 농촌여성들의 일손을 덜어주었다.
주곡인 쌀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절이기도 해서 생활개선회원들은 감자를 이용한 각종 음식만들기 등을 배워서 쌀 소비 절약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는 1962년 농촌진흥청이 발족하고 응용영양사업이 도입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영양섭취의 불균형이 심각했던 이때 응용영양사업이 추진돼 실태 기초조사와 목표량 설정, 사업 시행 평가 등의 단계를 거쳐 체계적 영양향상 노력과 지역에 맞는 과제들이 선정돼 실천됐다. 이 사업은 1977년까지 연장되며 실시됐는데 시군 단위까지 훈련조리실과 단체급식장이 생겨 균형 잡힌 식단과 위생관리, 식품 낭비를 줄이는 식사법 등이 농촌의 전 마을로 퍼져나갔다.
농촌영양개선연수원이 설립된 1978년부터는 농촌 식생활에 대한 본격적 연구와 농업인에 대한 체계적 교육의 틀을 갖추게 됐다. 응용영양시범마을이 선정돼 시군 농촌지도소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며 지도했다. 1979년 식생활과 영양개선을 위해  FAO에서 지원한 식생활교육차가 운영돼 농촌 오지마을에도 사업을 펼칠 수 있었다.

1980년대는 부단한 국민의 노력 끝에 경제안정기에 접어들었고, 농촌의 식생활에도 비로소 질적 향상을 가져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면서 농산물 개방화를 맞게 되던 때였다. 잉여농산물을 활용한 각종 병조림으로 가공법의 활용도가 높았다.
“옆집 언니들 보니까 농촌지도소에서 병조림도 배우고 여러모로 좋아 보여 30여 년 전에 생활개선회에 가입했어요.”
전북 고창의 서풍자 씨는 병조림이 생활개선회 가입의 동기가 됐다. 당시 배웠던 병조림을 지금까지 잘 활용하고 있다.

   
▲ 향토음식솜씨 경연대회는 회원들의 음식개발에 대한 의지를 높이는 촉진제 역할을 했다.

■ 1990년 이후 ~현재

 향토음식 계승 발전에 기여

 다양한 쌀가공품 생산,
 농촌융복합 사업의 주인공

 생활개선회 농가공품
‘농맘’ 브랜드 탄생

세계화의 물결 속에 농산물 수입이 자유화되고 농촌 인구는 감소되면서 농촌 어매니티가 부각되기 시작됐고 향토음식과 우리 음식에 대한 도시민의 관심이 높아졌다.
농촌여성들에게는 또 다른 기회였다. 우리음식연구회, 향토음식연구회 등이 속속 생겨나며 우리 농산물을 이용한 음식과 가공품  개발에 농촌여성들의 참여가 활발해졌다.
1990년부터 농촌여성 일감 갖기 사업이 시작되며 농촌의 여성들이 농촌자원을 활용한 가공품 개발에 주역으로 나서며 농촌의 여성CEO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6차산업의 신호탄이었다.

농촌여성들이 생활개선회의 각종 과제교육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지만 특히 각종 요리경연대회에 나가 상도 수상하며 더욱 용기를 얻고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고 경제적으로 자립의 계기가 됐다.
이제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생활개선회원들은 남아도는 쌀 소비 촉진을 위해 다양한 쌀 가공품 개발은 물론 쌀가공품 판매에도 노력하며 쌀 소비촉진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더불어 우리 농산물을 이용한 장류, 장아찌류 등의 생활개선회 농촌융복합 가공품 브랜드 ‘농맘’을 탄생시키며 농가소득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다.

 

■ 미니인터뷰 - (사)농촌생활발전중앙회 정금주 고문

“60년 식생활 개선의 노하우 세계에 전해주길…”

   
 

생활개선회는 농진청의 농촌생활개선사업의 동반자로 특히 우리나라 국민의 식생활 향상에 기여한 응용영양사업 과제들을 훌륭히 수행했다. 또 변화하는 시대별 과제에 따라 식량부족 해결, 우리농산물 소비촉진, 쌀 소비촉진에 기여해 왔다.
현대는 농촌여성들의 역할이 다양화되고 있어 생활개선 사업도 새로운 방향과 방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양보다 질을 따지고 몸에 좋은 건강하고 안전한 식품들이 환영받고 있어 생활개선회도 바른 식생활을 교육과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특색있는 지역의 농산물을 활용한 6차산업의 주역으로 도농상생에 앞장서 도시소비자에게 농심까지 전하고 있다.
생활개선회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세계를 위해 60년간 축적된 식생활 개선의 노하우를 아직 영양부족에 시달리는 개발도상국에 전수하는 일에도 역할을 확대했으면 한다. 무엇보다 북한과의 교류가 이뤄지면 북한 주민에게도 그 노하우가 전수되길 손꼽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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