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자비없네, 잡이없어-2030노동생존기 함께하기

►내 자식은 왜 저러고 살까?(3)에 이어

4. 2030 자녀세대가 바라는 일과 삶 : 그들은 어떻게 살고 싶은 건가?

어렵게 들어간 대기업을 나와 방송기자를 하다 배우를 하는 청년의 이야기처럼 이직을 넘어 아예 직종을 바꾸거나 대안적인 삶을 찾아 떠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4060부모세대는 멀쩡한 직장을 나와 정착하지 못하는 자녀세대가 이해되지 않고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서 이리 저리 얘기해보지만 결국 ‘네 인생 네가 알아서 하라’고 포기하게 된다. 내 자식은 대체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나답게 일할 수 있는 일터 : 조직문화

8인의 저자 중 한 명의 면접 경험은 청년들이 구직과정에서 느끼는 목마름을 대변한다.

“외국 시민사회단체 인턴 면접에서 면접관은 그간 해온 일을 소개해 달라했다. 조직에 대해 설명해주고 어떻게 협업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한 시간 가량 토론했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꼭 같이 일하고 싶어지더라. 조직도 이렇게 구직자에게 매력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일방적으로 우리 회사를 얼마나 알고 어떻게 기여할지 말해라가 아니라.”

<자비없네, 잡이없어 中>

 

책에 재밌는 사례도 있다. 어떤 스타트업 신입채용공고를 갓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일임했는데 “우리 회사 꼰대 없음” 이라고 써서 공고를 냈다. 대표가 그래도 너무 심한 거 아니냐 걱정했는데 지원자가 엄청 몰렸다. 신입사원 결정으로 그런 공고가 외부에 나가는 상황자체가 그 회사 문화가 어떤지를 보여주니까.

처음 사회에 발을 딛고 취업준비를 하는 청년은 내가 가고자 하는 조직의 근무조건에 대한 정보조차 얻기가 어렵다. 급여 협의는 언제 하는지, 조직문화는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인재상 말고 어떤 조직인지가 알고 싶다. 면접 자리에서는 채용에 영향을 줄까 염려돼 물어볼 수 없고 입사 후에는 다른 직원이 어떻게 하는지 눈치로 알아야한다. 힘들게 취업한 사람이 다른 일을 찾아 퇴사하는 건 ‘다른 일’이 아닌 ‘다른 조직문화’가 고프기 때문이다.

청년세대의 '일과 삶'을 주제로 필자가 만난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에도 '조직문화'는 꼭 들어갔다. 회식자리 술잔 돌려먹기, 부조리함을 말해도 "원래 그런거야" 라고 말하는 사장, 열정페이로 사원을 도구로 이용하는 회사 등 청년세대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조직문화가 직장생활의 가장 힘든 점이자 퇴사를 결심하는 이유로도 꼽혔다. 

필자가 만난 한 청년은 명시된 근무시간은 9시부터 18시였으나 실제로는 9시부터 21시까지 일했으며 바쁜 시기에는 새벽 2-3시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퇴근 이후 쓰러져 자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소규모 아웃소싱업체에서 그녀가 담당한 사람은 300여명 이었고 일하지 않고 놀러다니는 상사의 일까지 맡아 해야했다. 법인카드를 쓰며 놀러다니고 부하직원에게 일을 떠넘기는 상사의 부조리함을 사장에게 얘기했지만 돌아온 얘기는 "원래 그런거야"였다. 그날로 사표를 냈다. "내가 왜 이런 사람들과 함께 그렇게 고생하며 일했을까"하는 회의감과 허탈함이 밀려왔다고 한다. 현재 그녀는 규모있는 공공기관에 지원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중소기업이 구인난에 허덕여도 청년들이 지원하지 않는 건 편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임금체불, 부조리한 업무지시, 과도한 업무시간, 강요된 회식문화 등의 불합리한 조직문화를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점은 분명 구직자가 찾는 업무환경을 갖춘 소규모회사가 있음에도 그걸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조직문화를 알려주는 어플로 재직자의 의견을 참고할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 대다수 기업의 조직문화가 거기서 거기라 기본노동환경이 지켜지는지를 아는 수준에 그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세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은 자녀세대의 행복은 물론 조직에도 득이 된다. 사람을 뽑고 교육시키는 데 드는 비용을 절감하고 직원이 가진 능력을 제대로 쓸 수 있으니까. 청년들은 정말 자신과 맞고 성장할 수 있는 조직을 찾으면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워라밸 : 일과 쉼의 균형

 

“사소한 일에 뾰족하게 굴고 짜증을 내는 스스로를 돌아보고는 움찔 놀랐던 적이 있어요. 소진되어 버리니 모가 나더군요. 하루 이틀 연차를 쓴다고 해소되는 피로감이 아니었어요.”

“저마다 다른 이유로 절박하게 시간을 필요로 하는 때가 있잖아요? 한국의 조직은 거기에 대한 고려가 없고 조직에 개인을 맞추라고만 해요.”

<자비없네, 잡이없어 中>

 

4060이 대기업 등 회사와 직업의 인지도를 중시하는 것과 달리 2030은 회사를 고를 때 회사 인지도보다 하고 싶은 일인지, 업무량과 퇴근시간을 살피는 경향이 있다. 2030세대는 최고의 교육열과 경쟁 속에서 쉼 없이 달려온 세대다. 이전세대에 비해 물질적으로는 풍족한 삶을 살았지만 정신적으로는 쉼과 여유를 경험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학원과 입시경쟁에 시달리며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는 0교시부터 야간자율학습까지 짜인 일정 아래 몰입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대학에 가면 쉴 수 있을까 했더니 불황에 취업난, 살인적인 등록금으로 아르바이트와 각종 자격증, 스펙을 위한 활동을 하느라 대학은 취업고등학교를 방불케 한다. 부모세대와 선생님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 2030세대는 이미 소진될 대로 소모된 경우가 많다. 젊을 때 열심히 일하고 승진을 통해 치열하게 일하지 않아도 높은 연봉을 받는 관리직에 오른 부모세대는 경험에 힘입어 "지금 열심히 하면 나중에 편해"라고 하지만 청년들은 제대로 일하기 위해 지금 쉬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탈출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일을 통해 성장하는 만족이 크지만 그러기 위해 과로하지 않으면 안 되는 복잡한 상태를 맞닥뜨리며 혼란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감당해야 할지, 적당히 일할지, 새로운 일을 찾을지.

쉼을 위해 이직이나 퇴사를 한다면 개인은 물론 조직도 손해다. 실제 기업들이 신입직원을 뽑으면 1~3년 내 퇴사하는 비율이 높다. 최근에는 3개월~1년 내 퇴사하는 경우도 많다. 공채비용과 교육비용을 생각하면 조직경쟁력에도 손해다. 2030의 퇴사는 회사에 불만이 가득하거나 즉흥적 결정이 아니라 손익을 따진 합리적 선택인 경우가 많다. 스위스 민박집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 청년 저자는 장기여행을 하는 한국인 손님 대부분은 직장을 그만두고 왔다는 이야기를 한다. 쉼을 위해 퇴사라는 선택지 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법으로 보장한 최소한의 연차도 제대로 쓸 수 없는 분위기도 한 몫을 한다.

책은 유럽 국가의 휴가제도에 대해 소개한다. 유럽국가는 신입사원부터 1년 일하면 4~5주 정도는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 합의를 이루고 있다. 휴가를 쪼개 쓰지 않고 한 달을 쉬어도 된다. 휴가에 대한 개념도 다르다. 한국은 휴가가 ‘출근하지 않은 날’인데 반해 유럽은 일하는 사람이 ’제대로 쉰 기간’을 의미한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제대로 쉬지 못했을 경우 휴가를 늘릴 수 있다. 유럽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 김현익씨는 ‘연5주 휴가제’와 ‘주 35시간 근무제’를 회사에 도입중이다. 이런 제도가 가능하려면 한사람이 빠지더라도 원활하게 업무가 진행될 수 있도록 고용하는 게 기본이다. 우리보다 많이 쉬면서 경쟁력 있게 잘 사는 나라가 다수 있다는 사실은 한국 노동환경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말해준다.

일에 종속될수록 휴식의 범주는 유흥, 게임, 쇼핑 등으로 단순화된다. 만성피로를 소비로 보상하며 다음 노동을 이어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최근 스트레스 받아 지출하는 비용을 일컫는 ‘시발비용’이란 말도 생겨났다. 2030세대가 일과 쉼의 공존을 중시하는 건 다양한 이유가 바탕이 된 결과라 볼 수 있다.

*참고도서 : 자비없네 잡이 없어

►내 자식은 왜 저러고 살까?(5)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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