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62)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장편소설이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호철(1932~2016) 작가가 1966년 2월부터 10월까지 9개월간 <동아일보>에 연재해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배경은 1960년대 전쟁 후의 후유증을 그대로 앓고 있는 서울과 그 거리. 스물 한 살의 착하고 아담한 처녀(길녀)가 어머니의 새벽 재첩국 행상으로 근근이 입에 풀칠하고 있는 시골집의 가난으로부터 빠져나와 ‘무작정 상경’, 밤낮으로 몸을 파는 ‘종3의 거리여자’로 전락해 고단한 서울 삶을 살다‘오만 정 다 떼인 후’ 끝내는 서울을 떠나 시골로 돌아간다는 얘기가 소설의 줄거리다.

이 소설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돈 벌기 위해, 신기루 같은 꿈을 좇아 ‘무작정 상경’해 이미 380만 인구로 포화상태에 이른 서울이라는 도시공간과, 산업화·근대화 과정에서 독버섯처럼 피어난 ‘종3’ ‘오팔팔(588)’ ‘미아리 텍사스’ 같은 창녀촌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그 거리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희화적으로 그려 주목을 받았다.
이 소설은 곧 대중의 인기를 업고 연재가 끝나기가 무섭게 1967년 최무룡 감독, 김지미 주연으로 영화화  되기도 했다.

1960~70년대에 서울이란 도시는 괴물적으로 대도시화 했다.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쓰레기와, 쓰레기 같은 존재들을 양산해 냈다. 그 쓰레기들로 섬을 이룬 난지도가 지금은 철따라 형형색색의 꽃을 피우는 ‘하늘공원’이 되어 있음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서울이 도시화의 이정표처럼 1000만 인구를 돌파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해였고, 1992년 1090만으로 정점을 찍으면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린벨트로 무한개발을 제한시키고, 넘쳐나는 도시인구 수용을 위해 서울의 외곽지대인 경기도에 대규모 신도시를 개발했기 때문이었다.

2017년 기준으로 서울 인구는 991만 명으로 ‘인구 1000만 시대’는 이젠 전설같은 얘기가 됐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8월7일 발간한 <2018 행정안전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전체 인구수는 5177만8544명으로 지난해 보다 0.2% 증가했다. 이중 인구가 가장 많이 늘어난 지자체는 경기도, 가장 많이 감소한 지자체는 서울로 지난 해보다 7만3190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그렇게 서울 인구가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에는 빈집이 없다.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에는 모두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것을 전문가들은 ‘인구 블랙홀’이라 이름했다. 주택가격·전세가격 때문에 서울 밖으로 이주했다가도 기회만 되면 빨려들 듯이 서울로 들어온다는 것. 가장 안전한 돈이 되는 주택시장이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지상의 방 한칸’ 얻지 못하는 가난한 도시살이의 절망과 희망이 투영된 곳이 서울이고…서울은 ‘여전히’ 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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