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신열이 오르고 열꽃이 펴도
자기중심을 놓치지 말고
당당하게 환절기를 살자

콩을 튀기는 듯한 폭염과 농민의 마음을 타들어가게 한 긴 가뭄, 뒤늦게 불어닥친 태풍과 집중호우. 정신없이 두 뺨을 후려 맞은 기분이었다.
 
태풍이 쓸고 간 산야에/무너지게 신열이 오른다.
모래알로 씹히는 바람을 맞으며/쓴 알약 같은 햇살을 삼킨다.
그래. 이래야 계절이 바뀌지/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한 계절이 가는데
온몸 열꽃 피는 몸살기가 없을까/날마다 짧아지는 해 따라
바삭바삭 하루가 말라간다.(9월. 목필균)

긴 열대야의 잠 못 이루는 밤의 습관으로 처서가 지나고 백로가 지나도 창을 활짝 열어놓고 잤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을 즐기다보니 잊고 있던 감기가 찾아들고. 여름에서 가을로 이어가는 9월은 이제 아침저녁으로 확연하게 서늘하다.
서둘러 창을 닫지만 여전히 속에 여름이 남아 있는듯하여 선풍기를 켰다 껐다 하다가 그 덕에 시답지 않게 두통이 지나가나…. 배도 아프고 몸에 신열이 오른다. 가을로 겨울로 갈 예방주사를 맞은 건가. 맥을 추지 못하고 전기장판 온도를 올리고 누워 창밖을 내다본다.

방아(배초향) 보라색 꽃대에 나비, 벌, 잠자리가 날아다니고 하늘엔 뭉게구름이 피어오른다. 그래도 뒤늦게 내린 비로 배나무에 배가 조금씩 굵어지고 있고, 산비탈에 심은 오미자, 다래, 제피(산초)도 제법 열렸다. 남편과 거둬들여야 하는데. 이렇게 아침부터 누워있기는 처음이다. 아무래도 오늘 하루는 모든 일을 내려놓고 종일 앓아야겠다. 그리고 내일은 툭툭 털고 일어나고 싶다. 
우리가 사는 고장은 산이 깊어 항상 일조량이 부족하다. ‘며칠만 더 남국의 햇빛을 주셔서, 과일을 달고 향기롭게 하셔서, 추석 전에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게 하소서.’ 누워서 기도한다. 남편이 켠 TV에선 지구온난화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 해 가장 추운 시기 북극의 기온이 평년보다 20~30℃가 올라 얼음이 빠른 속도로 녹아 북극 생물이 생존위협을 받고 있다며 멸종위기에 처한 북극곰을 돕자고 한다.

이것이 과연 북극곰의 문제이기만 할까? 우리나라가 온대에서 아열대로 바뀌어 가는 것도 눈에 확 들어오진 않아도 아마 북극곰과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는 건 아닐지. 인간이 살아가는데 기본이 되는 자연환경과 기후의 변화는 거기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분야의 변화를 촉발하고 우리 자신들도 알게 모르게 그 변화에 적응하느라 달라지고 있다.
어쩌면 우린 매일 환절기를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변할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잔잔한 물결은 세찬 요동으로, 결국엔 급작스런 소용돌이로 이어질 것이다. 신열이 오르고 열꽃이 피더라도 자기중심을 놓치지 말고 당당하게 환절기를 살아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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