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42)

▲ 남북 이산가족 상봉<사진/통일부 홈페이지>

빈곤의 표지처럼
보이는 옷차림에서도
같은 아픔을 느낀다

아내가 임신한 사실을 모른 채 헤어져 68년이 지났다. 남편 모르게 아이는 태어났고, 기다리던 북측의 아내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살아있던 남측의 남편(89세)이 달려간 이산가족 상봉장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뱃속의 그 딸이 67세의 늙은이가 되어 나타났다. 서로는 그래서 끌어안고 통곡을 했다.

네 살된 아들을 두고 남하했던 92세의 할머니가 72세 노인이 되어 나온 그 아들 볼에 볼을 부비며 몸부림치는 모습도 보였다. 상봉가족마다 드라마보다 더 비극적인 사연들이었다. 취재하러 왔던 외신기자들도 “슬픈 민족이군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구상에 이런 비극적 현장이 어디 또 있을까.
누구도 원치 않았지만, 나라 지킬 힘이 없어 남북으로 나뉜 채 그 긴 세월이 이어져 왔다. 정치, 사회, 문화 그리고 언어의 단절은 겉모습에서도 남북한을 철저히 갈랐다. 옷매무새부터 달랐다.
두 사람이 서로 끌어안고 있을 때, 사람들은 TV화면을 통해서도 어느 쪽이 북측이고 어느 쪽이 남측인지를 알아 볼 수 있었다. 북측 사람들은 가슴에 ‘북측’ 배지를 달고 있었으나, 그게 가려 안 보이는 상태에서도 쉽게 구별이 되었다. 우선 옷에서 차이가 돋보였다.

특히 여성들은 하나 같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그러나 너무 일률적인 느낌을 줘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옷을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는 싸한 애틋함을 느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남측은 거의 양복차림이었다. 사실 양복은 주인이 없는 옷이면서도 이제 세계인의 옷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고유의 한복을 입고 살아왔듯이 산업혁명 이전에는 서양에서도 각 지역마다 전통의상을 입었다. 지금 같은 서양복은 17세기부터 유럽 남성들의 옷에서 오늘날의 형태가 서서히 등장하게 되었다. 철저히 귀족위주의 화려하고 거추장스러운 옷에서,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부르주아 계급과 시민계급의 성장과 더불어 옷이 활동적인 면모를 갖추어갔다.

다시 말해 남성들에게 산업사회에 적합한 옷이 필요해진 것이다. 여성들의 옷은 19세기 말쯤부터 본격적인 현대화가 이루어진다.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양복을 입는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산업이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자연스레 전통의상을 벗고 국적 불명의 양복을 입게 된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옷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한나라의 옷이 얼마나 양복으로 바뀌었나’ 하는 점을 경제적 여유로움의 지표로 삼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분단 68년이 여러 아픔을 만들어 냈지만, 우리는 빈곤의 표지처럼 보이는 옷차림에서도 같은 아픔을 느끼게 된다. 이 비극이 하루속히 끝나기를 기원한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