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족과 나누는 감정이
바로 집밥에서 얻는 위안

열대야가 사라진 새벽녘에야 겨우 눈을 붙이고 보니 한 달 내내 주야로 돌아가던 반려 선풍기는 목을 돌릴 때마다 드디어 ‘뿌드드득’하는 소리를 낸다. 거실에 오래된 에어컨을 비롯해서 선풍기, 큰 TV 등이 있어서 한 달 내 우리는 원룸 시스템으로 ‘거실콕’을 하며 살고 있다. 웬만하면 집밖에서 하던 자질한 일도 햇살을 피해 거실로 끌어들이니 산속 홀로 사는 자연인보다 더 자연인같이 산만한 풍경이다. 일찍이 개밥을 주고 텃밭을 돌아온 남편의 흔적과 토마토, 참외, 고추, 오이를 딴 바구니가 현관 입구 거실에 밀어 놓여 있다. 유럽여행 때 스위스 융프라우에서 경이로움과 추위에 떨면서 몸을 녹이며 먹었던 컵라면도 한 줄 있고, 어제 못 다한 고구마순 껍질 벗길 것도 윗목에 자리를 차지했다. 벌에 쏘이고 지네에 물렸을 때를 대비한 구급상자와 산벚꽃 무늬가 선명한 인견이불도 자고 일어난 자리에 널브러져있다.

열린 거실 창에는 말벌이 망창 밖으로 웅웅거리며 침입을 노린다. 아침부터 안개가 뿌옇게 산을 내리눌러 덮치는 걸 보니 오늘도 불볕의 뜨거운 화덕 열기가 족히 짐작된다. ‘까톡까톡’ 손자녀석의 얼집(어린이집) 놀이 사진이 왔다. 손자가 그린 그림엔 온통 크고 작은 동그라미로 가득 차 있다. 뭘 그린 거냐고 물었더니 가족이 식탁에서 밥 먹는 모습이란다.
주말에 하루는 결혼한 서울의 작은딸 집에서 가족이 모여 밥을 먹는다. 특히 손자가 태어난 후로는 손자도 볼 겸 거의 빠짐없이 우리가 올라간다. 시골집에서 키운 풍성한 제철 먹거리를 가지고 애들과 한 끼라도 집밥을 나누고 싶다.

손님을 청하는 큰 식사가 아니면 나는 집밥을 고수한다. 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나는 가르치는 것과 먹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나 또한 어려서 집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시절 자취하며 혼자 살 때부터 졸업 후 부산에서 교직생활하다 서울로 시집가기 전까지 엄마가 물어다준 집밥으로 살아왔었다.

교통도 불편했던 시절 외동딸이어선지 머리에 이고 지고 와서 제일 좋은 것으로 먹여주시던 그것이 내게도 조금은 배어서일까. 나 역시 자식에게 그러하다. 그러나 엄마를 밥하는 존재로만 묶어놓고 싶진 않다. 엄마도 요리를 못하거나 싫어 할 수도 있다. 집밥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고 누군가(엄마)의 희생과 노동으로 만들어진다는 것도 알게 됐다. 차려진 식탁 너머의 시간을 나는 숱하게 보아왔기에 사 먹는 밥과는 차원이 다른, 정서적인 충족과 그로 인한 유대감이 강해짐을 부인할 수 없다.

요즘 잘 차려진 가정식 찬을 주 메뉴로 내주는 식당에서 집밥 같은 걸 살 수 있다. TV에서 맛집 인터뷰를 할 때면 늘 “옛날 어머니가 해 주시던 그 맛”이라고 극찬을 한다. 그래도 그건 진짜가 아니란 걸 모두가 안다. 나도 바쁜 일이 겹치고 힘이 들 땐 반조리된 것이나 양념이 돼 있는 걸 사가지고 데우거나 새로 양념을 가감하기도 해서 가족과 먹는데 그래도 ‘집밥’이 된다. 그 가치가 ‘밥’에 있는 게 아니라 ‘집’에 있기 때문이고 ‘가족’에게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돈으로 뭐든지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는 뭔가를 가족과 나누는 감정이 바로 우리가 집밥에서 얻는 위안일 것이다. 어린 손자도 제 식판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둘러앉은 여러 가족과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웃고 얘기하며 먹는 게 좋았나보다. 나는 손자의 그림을 보며 명치 끝 안 어딘가가 찌르르하다. 이번 주말엔 뭘 해서 먹을까 생각하니 느리던 행보가 빨라지고 요즘 보았던 보양식 레시피 노트를 찾아보노라니 무더위를 깜박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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