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56)

90 노모께서 요양원에 가 계신 지 8년째다. 30여년 전, 스물여덟 시퍼런 셋째 아들을 먼저 가슴에 묻고, 그 이태 뒤 아버지께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후 그토록 성성했던 어머니의 생체시계와 모든 기억들은 그 시점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여러 해를 미친 여자처럼 넋을 놓고 고향 읍내 거리를 떠돌았다. 흡사 저 고조선 때 <공무도하가>를 부르면서 물에 빠져 죽은 백수광부의 처처럼… ‘님더러 강을 건너지 말랬더니 님은 그예 건너시다 빠져 죽으니 가신 님을 어이할꼬’…

고향 어르신들을 함께 모셨던 팔순 잔치 때만 해도 “우리 곁에서 오래오래만 사시라” 했던 자식들의 허언은 말 그대로 맘에도 없는 빈쭉정이 말이 됐다. 맘 한자리 앉힐 길 없어 집 두고 거리로만 떠도는 어머니를 도저히 감당키 어려워 요양원으로 모신 터다. 지금도 요양원에 모시던 첫날, 큰며느리의 두 손을 꼭 잡고 불안과 공포에 떨며 초점을 잃고 흔들리던 어머니의 젖은 눈망울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뒤 요양원으로 찾아뵐 때마다 어머니는 ‘왜 날 여기다 갖다 놨냐’는 투로 “나 집에 갈겨!”를 노래하듯 반복해 얘기했다. 그런 중에도 요양원 직원이 나를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으면, 손을 들어 올려 ‘엄지 척!’했다. ‘우리집 큰아들!’이란 뜻이다. 그리고 단 한번도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밥 먹었니?”, “오늘 쉬는 날이여?”를 반복해 물으셨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 머리 속에 샘물처럼 고여있던 자식들과 지난 날의 기억들이 시나브로 하나 둘씩 사라져 갔다. 지금은 중증치매로 자식들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신다.

최근 ‘기억다방’(기억을 지키는 다양한 방법)이라는 아이템으로 치매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서울시의 조사결과가 눈길을 끈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치매안심센터를 방문한 노인 373명에게 ‘치매에 빼앗기고 싶지 않은 기억’을 물은 결과, 첫째가 ‘가족’(66%), 그 다음이 ‘자신의 인생’, ‘고향’, ‘친구’ 등의 순이었다. 가족에 대한 기억 중에서는 첫째가 ‘자녀에 대한 기억’(38%), 그 다음으로는 ‘가정’, ‘배우자’, ‘부모님’, ‘손주들’을 꼽았다. 특히 자녀에 대한 기억 중에서는 ‘첫아이 출산 기억’을 지키고 싶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누군가 ‘부모의 나이가 많아 수를 누리니 복이라 기뻐하지만, 돌아가실 날이 가까우니 두렵다’ 했지만, 정작 그 부모는 다 잊혀져간 하얀 기억의 강안 저편에서 그냥 아무 말 없이 서 계신다. 쑥대밭처럼 뒤엉켜 살리라던 세상, 자신의 삶의 전부였던 자식들과의 이별은 그러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바람처럼 한순간에 찾아 올 것이다. 50·60·70된 자식들은 아직도 그 어머니의 탯줄 끝에 매달려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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