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자연은 자기를 열어
신기한 비밀을 내주고
친구가 돼 준다

백 년 만에 왔다는 폭서에 온 세상이 끌탕이다. 이른 새벽에 나가서 오늘 꼭 해야 할 옥수수 따기를 마치고 해가 뜨기 직전에 집으로 들어왔다. 땀범벅에 샤워를 마치니 “노인들은 한낮에 외출을 자제하라”는 마을 방송이 스피커에 울려 퍼지고, 무더위 재난 메시지가 날아든다. 장마가 그치자마자 시작된 7월의 불볕더위가 한 달 가까이 지속되니 예사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 이젠 걱정이다.

요사이 나의 주특기인 ‘대충하기’를 발휘해서 머리 안 아프고 재미있게 삼시세끼를 해결하려 하고, 하루 종일 방콕 중이다. 우리 부부 공동의 문화활동으로 TV 드라마 보기 외 종편까지 90여 개의 채널을 오르내리며 볼만한 프로를 찾다보면 종편에서 재방송을 가장 많이 하는 게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다. 도시에선 버튼 하나로 밥을 짓지만 산속에선 밥 한 끼 먹기도 불편하고 쉽지 않다. 불편을 감수하기 싫고 귀찮음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보는 것만으로도 대리만족이 되겠지만 ‘나는 자연인이다’의 주인공들은 불편도 낭만으로 즐기며 소소한 행복을 누린다. 자연은 적극적으로 누리는 자에게 자기를 열어 아름답고 신기한 비밀을 내어주고 병든 자에겐 녹색요양원이 되고 친구가 되고 자연재벌로 살아가게 한다. 오지에서 자유롭게 나름의 색깔을 살리며 얼짱이 되고 몸짱이 되고 속짱이 되는 얘기를 듣는 것이 흥미롭다.

우리 집은 서향이라 오후 3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 햇살이 더욱 강렬해지는데, 햇볕을 차단하려고 두터운 암막커튼을 치고 각기 선풍기 한 대씩으로 견뎌보아도 이미 뜨거워진 방안 공기가 얼굴까지 화끈거리게 하면 TV 시청을 포기하고 나는 욕실로 피서를 간다. 붉고 넙죽한 고무대야에 지하수 찬물을 받아 졸졸 흐르게 한 다음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두 발을 담그고 찬물에 적신 타월을 꼭 짜서 어깨에 두른 다음 코앞에 선풍기를 돌리면 몸이 부르르 떨릴 만큼 시원하다.

이 프로에서 가장 열심히 본 것은 주인공들의 기구하고 절절한 사연이다. 산으로 홀로 들어 와 오롯이 혼자 살아낼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한계를 겪었다는 점이다. 거기에 윤택 씨와 이승윤 씨의 겸손하고 따뜻한 접근으로 낯설고 홀로 살아 온 기인과의 만남에서 큰 공감과 폭 넓은 소통을 이끌어내 그들의 아픔과 고통에 하나 되며 함께 웃고 울어 시청자와 함께 공유하는 매력이 있다는 점. 매 프로마다 비슷한 포맷으로 반복되지만 각 사람마다 펼쳐내는 각본 없는 드라마다. 고통 끝에 그들이 마지막으로 도달한 곳이 자연이었다는 점, 세상의 욕망을 다 버리고 자신을 내려놓았다는 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고 지금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다는 점. 또 자기 삶에 대한 해석이 되고 통찰이 있어 여유롭고 따뜻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달라졌다는 것, 자연 속에서 배우고 적응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기쁨으로 현대인이 잃어버리고 사는 인간 본연의 삶을 주도적으로 구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중년에게 인기 폭발 중인 노사연 씨의 ‘바램’이란 가요의 맨 마지막 가사에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라는 내용이 귀에 들어온다. 인간은 모두 자연인이다.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삶을 자유롭게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다. 그래도 이 프로에서 주인공들 대부분이 잘 살아내는 모습이 안심이 되고, 감사가 되고, 희망이 되고 부럽기도 하다. 나는 ‘바램’을 따라 부르며 오늘의 피서를 마치고 어둑해진 한여름 밤으로 걸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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