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미월의 문학향기 따라 마을 따라 - 제주도 애월을 중심으로

유채꽃이 피고 진 자리에는
어머니․할머니의 숨비소리와
4.3운동의 아픔이 녹아있다

▲ 차귀도 앞 포구

해녀는 바다 개척자이자 독립투사
비행기 착륙 소리를 뒤로하고 닿은 제주에는 차 반 사람 반이다. 손님을 맞으려는 렌터카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한가한 섬을 기대했는데 시내를 지날 때도 많은 교통량이 제주인지 서울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제주도가 많이 달라졌다.

한적한 애월읍에 접어들자 풍광은 확 달라졌고 비로소 제주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제주 해녀 시조집인 『해양문화의 꽃, 해녀』발간 축하와 ‘오늘의 시조시인 회의 여름 세미나’ 참가 차 제주를 찾았다. 제주에는 5~6회 방문했지만 대부분은 성산일출봉이 있는 남쪽 위주였고 애월읍이 있는 북서쪽을 자세히 보기는 처음이다.

제주의 노란 유채꽃이 피었다 진 자리에는 어머니·할머니의 숨비소리(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물 밖으로 올라와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가 담겨 있고 격랑 속 4.3운동의 아픔이 녹아있듯 애잔함을 준다.

유네스코는 ‘제주해녀문화’를 2016년 11월30일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조선 세종 시절 제주목사로 부임했던 기건은 눈 내리는 날 해녀들의 고된 물질 모습을 보고 “저렇게 힘들게 채취하는데 앞으로 내 밥상에는 전복을 아예 올리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제주에서 해녀의 역할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물질에 그치지 않는다. 해녀는 좋은 풀을 찾아 유랑하는 유목민처럼 국내는 물론 일본·중국·소련의 국경을 넘어 바다를 찾아 나선 개척정신의 소유자였다. 또한 일제의 수탈에 맞서 대규모 항일운동을 전개했던 독립투사들이기도 했다.

시조시인들이 바다와 해녀를 소재로 쓴 작품들로 가득한 시조집 중에서 한 편을 소개한다.

꿈에나 물옷 벗으면 겨울바다가 뜨겁다
돌밭에 바람 밭에 돌처럼 바람처럼/해가 뜨고 달이 뜨면 손금 같은 바다 밭에/호오이, 호이 숨비소리로 애월 바다에 안긴다//바다가 내 집이랴 파도가 네 품이랴/이어도 이어도 사나 애월에, 애월에 사나/꿈에나 물옷 벗으면 겨울 바다가 뜨겁다 (‘애월 바다’ 한분옥 시조시인)

가까이에 차귀도가 보이고 바로 앞에는 작렬하는 여름 태양 아래 쪽빛바다가 출렁인다. 빨래처럼 널린 한치가 바람에 춤추는 풍경은 차라리 한 장의 사진이고 그림이다. 그런 배경을 뒤로하고 애월읍 고산리 자구내 포구 행사장에서는 해양문화의 꽃인 제주 해녀들의 각종 공연이 이어지고, 기념시집 발간을 축하하는 해녀 시 낭송이 이어졌다.

▲ 해녀 공연과 시낭송

어머니도 해녀였다는 시인인 사회자의 목소리는 그리움과 아픔, 감격으로 떨렸다. 어머니 같은 해녀들이 직접 물질하는 모습, 노래에 맞춰 연출하는 공연을 보다가 나도 그만 왈칵 눈물이 쏟아졌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거친 물살을 헤치고 노동으로 단련된 팔은 남자보다 씩씩해 보였다.

해녀의 일은 거꾸로 서야만 닿는 바다 속 푸른 텃밭에서 수초처럼 흔들리며 갈퀴의 날을 세워 한 톨의 알곡을 줍듯 건져 올리는 작업이다. 바닥에서 전복·미역·소라 등 맵찬 씨알들이 손 뻗으면 잡힐 듯해도 한계를 넘어가는 욕심은 멈춰야 한다.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고된 물질을 하면서 노출되는 수압으로 밤이면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직업병에 시달리는 해녀들이 많다고 한다.

제주 하면 성시경의 노래 ‘제주도의 푸른 밤’이 떠오르고, 언제 들어도 가슴이 촉촉이 젖으며 좋은 시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가 떠오른다.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살아서 가난했던 사람/그 빈자리가 차갑다//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이생진 ‘그리운 바다 성산포’ 부분)

정말로 그대가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뭍에서 섬으로 떠나는 국내 여행지 중에 제주도가 아마 제일 폼 나고 멋진 관광지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항공료의 부담이 있지만 중문단지의 아름다움과 잘 가꿔진 올레길을 걸어보는 일, 비자림 곶자왈 등 천연의 숲을 걷는 일은 선택하는 자들의 축복이다. 한라산의 정기는 바라만 봐도 구름타고 덤으로 온다.

신선도가 탁월한 고등어, 자리, 은갈치, 옥돔 한 점의 맛이 일품이고 특산품인 한라봉과 귤로 만든 주스와 과줄, 쿠키, 초콜릿 맛은 익히 알려진 외국산 초콜릿보다 맛이 좋다.

제주를 찾을 때마다 다른 빛깔의 바다, 곳곳에 있는 오름, 화산과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낸 기암괴석, 말이 뛰노는 목장과 감귤농장. 제주도의 자연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신비로움을 선사한다. 관광지가 따로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고 어디를 가든지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섬 전체가 휴양지이고 관광지인 셈이다.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마다 신혼여행의 먼 기억마저 다가와 설렘을 증폭시키는 섬. 성시경의 노래가 귓전에 감긴다.

‘떠나요~~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정말로 그대가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떠나요 ~ 제주도 푸른 밤하늘 아래로…’

류미월 객원기자 rhyu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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