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조강지처의 넉넉함으로
펑퍼짐하며 푸짐함으로
말수가 적은 수더분함으로...

유월 내내 가뭄을 타다가 어제는 기다리던 비가 종일 쏟아졌다. 늘어져 있던 나무와 풀들이 생기를 되찾고 공기가 한층 맑아져 숨쉬기도 한결 수월하다. 오늘은 모처럼 배 봉지 싸기를 쉬고 마을 어르신과 요즘 캔 하지감자를 찌고 삼계탕을 해서 함께 보양식을 먹기로 했다. 배나무 언덕길을 내려가다보니 농원 입구 간판 아래 작은 꽃밭에 작년 감물초등학교에 산책을 갔다가 남편이 씨를 받아 심은 접시꽃이 어느새 훌쩍 자라 자줏빛 붉은 꽃을 피우고 있다. 차를 멈추고 한참 바라보니 옛일이 어제 일처럼 피어오른다.

남편은 작은딸 첫돌 무렵 사우디로 파견 근무를 나갔다가 2년 6개월 만에 돌아왔는데, 그 즈음 다니던 교회에서 전교인 수련회로 강원도 ‘궁촌’이란 마을로 갔었다. 2박3일 돌아오던 날 백일장을 열었는데, 마을 토담에 등을 대고 붉게 핀 접시꽃을 배경으로 남편에게 쓴 편지가 뽑혀서 읽혔던 기억이 난다. 1980년 대 우리나라 어디서건 도종환씨의 ‘접시꽃 당신’이란 시를 모르는 여성이 있었을까?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안개꽃 몇송이와 함께 묻고 돌아오네/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해주고/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 옷 한 벌 해 입혔네/옥수수 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접시꽃의 꽃말이 ‘애절한 당신’이듯 이 시는 결혼한 지 2년 만에 암으로 저 세상으로 떠난 아내를 묻고 쓰라린 회한에 젖은 절절한 망부가였다. 나 역시 당시 남편과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서였을까?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목이 메었던 건 비록 나만은 아니었으리라.

마을로 들어서 회관에 들어가니 어르신 두 분이 앉아 계신다. “더운데 뭘 그렇게 신경을 써~” “다들 일 하러 가고 우리밖에 없어, 점심이나 먹으러 올 테지 뭐~” 회관분위기도 한 해가 다르다. 한창이시던 어르신도 이제 팔십을 넘어 구십 세에 가깝다보니 마을의 감투도 다 젊은이에게 돌아가고 예전 같지가 않다.

약재를 삶느라 물을 끓이고 닭을 손질하고 밥을 안치고 준비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마을 반장이 들어오며 고개 너머 사과밭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모두들 깜짝 놀라시며 “아니 그새 갔다는겨?” “아이구 저런~ 그 남편 불쌍해서 어쩌나~” “지난번에 괜찮다고 하더니만 어째 그래 갔어?” 사과밭 아저씨가 마눌님의 병이 시골에 오면 좀 나을까해서 4년 전에 여기로 왔는데 결국 병이 심해져서 근래 내내 서울대학 병원에 있다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사과집 사람이 참 좋았는데... 예의범절도 바르고...” “나이 아즉 칠십도 안 되었다는데~” 모두 혀를 끌끌 차며 남편과 남겨진 자식, 그리고 넓은 사과밭, 살아갈 일을 걱정하고 계셨다. 참으로 아까운 사람 아쉬운 사람이라며 긴 한숨을 내쉰다.
동네 어르신들이 다 모여서 젓가락으로 찌르면 금세 부서져 분이 팍살팍살 나는 감자를 손으로 받쳐 드시면서도 조용하시고 뜨거운 닭국을 소리 없이 드신다. 어쩌다 부딪혀 내는 솥뚜껑 소리에도 눈을 똥그랗게 뜨고 놀라신다. 사람은 가고 그 마음 한 켠을 비우는 일이 참으로 가엽고 쓸쓸하기가 그지없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커다란 웃음 지으며 활짝 열어 제친 꽃잎은 마치 조강지처의 넉넉함으로, 펑퍼짐하며 푸짐함으로, 말수가 적은 듯 한 수더분함으로, 내 눈에 가득차 오르는 당신은 이제 붉은 접시꽃 한 송이입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