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미월의 문학향기 따라 마을 따라 - 경남 통영

▲ 통영 앞바다

예술가들과 함께 숨을 쉬듯
꿈속을 거닐 듯
또 다른 길을 걸으리라~

남쪽에서 파란 물이 출렁일 때면 마음도 한 뼘씩 젖어든다. 남쪽은 그리움을 실어온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훌쩍 떠나고 싶은 곳도 남쪽이고, 손가락만한 하얀 김밥에 매콤하게 양념 된 오징어가 궁합이 잘 맞는 충무김밥이 생각나는 곳도 통영이다. 통영 앞바다가 그리울 즘 마침 한국시조시인협회에서 박재두 시인을 기리는 세미나가 있어서 통영에 다녀왔다.

통영은 동양의 나폴리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곳이다. 쪽빛 바닷물이 초여름의 바람을 업고 찰랑거리고 한편, 파란 하늘에는 미륵산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가 하늘에 수를 놓고 땅에는 루지(luge, 경기용 소형썰매)라는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재미가 있는 관광레저에도 안성맞춤인 도시다.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통영 꿀빵’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 통영시민 문화회관으로 걸어 오르다 보니 통영 앞바다가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통영은 예향(藝鄕)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꽃>이란 시로 유명한 김춘수 시인, 청마 유치환 시인, 소설가 박경리, 시조시인 김상옥 등 문인들의 체취가 거리 곳곳에서 향기를 부려놓는다. 통영거리를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문학에 빠지게 된다. 예향의 거리라서일까. 작고한 문인들의 좋은 기(氣)가 공기를 타고 내게도 전해지는 것만 같다. 경남 문인들과 전국에서 온 시조시인들이 시조문학에 대한 관심이 쏠린 회관 세미나 장에서는 열띤 토론과 박재두 시인을 기리고 그를 깊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 유치환 ‘깃발’ 시비(詩碑)

시비(詩碑) 앞에 멈춰서다
세미나를 끝내고 통영문화 탐방의 시간으로 시비가 있는 거리를 걸었다. 청마 유치환의 <깃발>이란 시비가 눈길을 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아는 그는.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읊어봤을 익숙한 시다. 시비 앞에 서서 다시 읽어보아도 좋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다보니 초정 김상옥 시인의 시비가 해안가 숲속에 아담하고 고즈넉하게 있다. <백자부>, <느티나무의 말>, <어느 날>, <가을 하늘>의 시가 보기 좋게 자리 잡고 있었고 <봉선화>라는 시에 눈길이 멈췄다.

김상옥 시인의 <봉선화>라는 시조다.
비 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 주던/ 하얀 손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 손에 본 듯 힘줄만이 서노나

봉선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었다. 누님과 어린 시절 추억이 서린 그리움의 다른 말이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 앞에서 봉선화는 잊혀가는 그리움에 불을 댕긴다. 초록이 한창인 숲속을 거닐며 시비 앞에서 좋은 시를 감상하는 시간을 갖고 탁 트인 통영 앞바다를 바라보니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한 마음이 든다.

풍경도, 볼거리․먹거리도 예술
통영은 볼거리·먹거리가 풍성한 도시다. 문학이 손짓하는가 하면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리는 윤이상의 거리가 음악을 불러오고, 해양의 도시인 통영은 요트와 스킨스쿠버, 윈드서핑 등 각종 해양스포츠가 꽃을 피우는 도시다. 그런가 하면 역사가 깊고 유적지가 많다. 충렬사에 가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을 볼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되새기게 된다.

그뿐인가. 통영은 봄이면 봄향기 가득한 쑥과 함께 끓인 ‘봄도다리쑥국’은 봄을 알리는 에너지의 신호탄이고, 여름이면 최고의 보양식인 하모(갯장어)회와 멍게비빔밥이 있다. 전국에서 사계절 사랑받는 충무김밥은 정평이 난지 오래다. 우리 몸에 좋은 멸치와 굴과 김이 나는 곳도 통영이고, 통영에서 배 타고 가면 닿는 욕지도에서 나는 섬고구마는 해풍을 맞고 자라서인지 쪄먹고 구워 먹기에 알맞은 달콤하면서 구수한 맛을 자랑한다.

동피랑 벽화마을을 오르다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카페에 앉아 마시는 차 한 잔은 비릿한 바닷바람과 섞여 삶을 돌아보게 하고 깊은 맛을 준다. 통영은 발길 닿는 대로 어디를 걸어도 좋다.
예향이란 도시에 걸맞게 시인, 소설가, 작곡가, 음악가, 화가 등 문화예술인들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있다. 2박3일 정도 여유를 갖고 돌아보면 좋을 곳이다. 짧은 여정으로 다녀온 곳이라 아쉬움이 많이 남는 통영. 김춘수 생가, 청마 유치환 생가터, 화가 김용주가 살았던 곳, 소설가 박경리가 살았던 곳, ‘김약국의 딸들 촬영소’ 박경리 묘소, 전혁림 미술관... 어느 날엔가 가보지 못한 거리를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예술가들과 함께 숨을 쉬듯, 꿈속을 거닐 듯, 또 다른 길을 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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