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석좌교수

최재천 석좌교수는 국립생태원 설립을 제안한데 이어 생태원 건립과 조직 미션, 비전의 밑그림을 그렸다.
2013년 10월 초대 국립생태원장으로 취임한 그는 정부의 관광객 유치 목표를 300% 이상 달성해 매년 거의 100만 명씩을 끌어들이는 등 경영의 귀재로도 평가받았다. 3년2개월의 임기를 마치며 그는 별도의 퇴임식을 하지 않고 500여 직원들에게 ‘국립생태원을 떠나며’라는 편지글을 돌렸다.
이 글이 출판계로 흘러들어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라는 책이 엮어졌다. 이 책에는 최 교수의 세계적인 과학자와의 폭넓은 교류와 철학, 성공 노하우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정보가 담겨있다. 특히 CEO로서의 섬세하고 따뜻한 경영비화가 수록돼 있다. 최 교수에게서 국립생태원 운영 당시의 활약상을 들어봤다.

조직경영 10계명 마련해
 직원들과 함께 발로 뛰며
 한 해 관람객 100만 유치

국립생태원 설립 제안과 청사진 마련
초대원장으로 취임해 프로그램 개발

“국립생태원은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최재천 교수는 노무현 정부시절 첫 환경부장관이었던 이치범 장관과의 식사 자리에서 환경 문제 해결의 기반이 될 국립생태원의 설립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생태원의 밑그림을 그리는 용역 책임을 맡게 되면서 생태원과 인연을 맺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립생태원 설립 이후 최 교수는 원장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2013년 10월 윤성규 환경부장관으로부터 원장 임명장을 받고 생태원에서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임명장을 준 윤성규 환경부장관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관광객 30만 명의 유치를 주문했다.

“생태원 후문에 맞닿아 있던 장항역은 용산역에서 새마을호로 3시간15분이나 걸립니다. 고속버스로 군산에 와서 택시를 타고 들어가도 3시간30분, 자가용으로 고속도로를 거쳐 오는데도 3~4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라 생태원에 연간 30만 명의 관광객을 모으기란 쉽지 않은 과제였죠. 연구와 교육을 우선으로 해야 할 학자로서 관광객 모으기에 열중하는 것도 심정적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전시프로그램 개발도 쉽지 않았다. 일에 진척이 없자 서천군의 유지와 군의원 등이 수시로 원장실에 들이닥쳐 “우리가 생태원 땅을 줬는데 생태원은 우리에게 뭘 줄 거냐?”며 민원이 쇄도했다고 한다.
최 교수는 ‘연구와 교육, 전시’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아야 했다. 생태원에서 연구를 중심으로 해야 했지만 지역주민의 민원을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계절별 기획행사․특별전으로
사시사철 관람객 유치 성공

그는 독창적인 전시·홍보를 통해 전국의 관광객을 유치, 그들이 지역에서 식사도 하고, 특산품도 사가는 홍보전략을 구상했다. 그는 이화여대 재직 중 자연사박물관에서 전시·기획한 경험을 되살려 흥미로운 전시·관광 프로그램 개발에 힘을 쏟았다.

봄에는 ‘우리들꽃 이야기’라는 야생화 전시, 여름에는 ‘하하하(夏夏夏) 생태체험’ 전시, 가을에는 ‘어느 멋진 가을날에’, 겨울에는 ‘겨울방학 생동생동(生動生冬)’ 등 계절별 기획행사를 운영했다.
에코리움 열대관에서는 열대식물에 붙어서 자라는 난을 전시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으며, 그 밖에도 ‘독화살개구리전’, ‘우리 독도이야기’, ‘습지생물전시’ 등 다양한 생태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개미세계탐험전’에서는 중남미 열대림에서 나뭇잎을 잘게 썰어 퇴비를 만든 다음 그걸 거름으로 삼아 버섯농사를 짓는 잎꾼개미 마을을 세계 최대로 꾸며 전시했다.
“개미 전시를 통해 생태원을 더 널리 알리고 싶었죠. 잎꾼개미와 푸른베짜기개미를 들여와 전시하려고 했는데, 일이 순탄치 않았어요. 농림축산검역본부의 검역절차와 승인허가를 받기까지 8개월여나 걸렸죠.”
잎꾼개미는 베네수엘라 바로 위에 있는 트리니다드 토바고라는 섬에서 채집해 영국을 거쳐 서천에 들여왔다. ‘지구 최초의 농사꾼’으로 알려진 잎꾼개미가 이파리를 물고 10m를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세계 최대의 개미마을을 만들었다. 개미마을까지 가는 길은 4층으로 돼 있어 개미의 진귀한 행렬에 관광객들은 시선을 떼지 못했다.
또 오스트리아 북부에서 푸른베짜기개미를 채집해 영국을 거쳐 들여와 세계 최초로 전시했다. 이 전시는 한산모시축제와 함께 개최돼 ‘한산모시짜기개미’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지역을 대표하는 특별한 전시가 됐다고 최 교수는 설명했다.

세계적 생태학자 기리는 숲길
소리꾼 장사익의 찔레꽃동산도 조성

국립생태원은 세계적인 생태학자의 이름을 딴 길을 만들어 관광코스로 개방했다. 2014년 에는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이자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의 이름이 붙은 ‘제인 구달 숲길’을, 이후 2015년에는 2.2㎞에 이르는 ‘찰스 다윈·그랜트 부부 길’ 숲길도 조성했다.
“생태원 내 보존녹지를 활용해 생태학자의 길을 조성함으로써 학자들의 업적도 기리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교육장으로 활용해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습니다.”

최 교수는 황무지 야산 언덕에 찔레동산을 조성했다. 찔레동산 한쪽에 소리꾼인 장사익의 ‘찔레꽃 노래비’도 세웠다. 그는 ‘보릿고개’ 시절, 민초들의 삶과 정서를 대변하는 찔레꽃에 대한 이해와 생명사랑 정신을 알리기 위해 이 동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 역시 장사익의 구성진 찔레꽃 노래를 들으며 찔레꽃을 볼 수 있는 코스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프로그램의 개발로 2014년 한 해에만 100만여 명의 관광객이 몰려와 대성황을 이뤘다.

생태원 관광 호재로 서천군 관내에 음식점들이 늘어나고 주말에도 관광객이 1만여 명 넘게 몰려오는 통에 농민들이 경운기 통행에 차질이 많다며 민원을 제기할 정도라고 한다.
최 교수는 생태원의 성공비결을 이렇게 요약했다.
“500명 직원과 목표와 가치를 확실히 공유하며 똘똘 뭉쳐 함께 일했기 때문입니다.”

최재천 교수는…
‘사회생물학의 창시자’로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개념을 한국으로 들여와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 온 학자다. 학계․업계․문화계 등 사회각계를 넘나들며 창의와 지혜 찾기를 주제로 한 강연과 방송출연, 칼럼 등으로 분주한 스타강사이기도 하다.
그는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서 생태학 연구에만 치우치지 않는다. 곤충을 시작으로 동물, 인간, 사회변화를 아우르며 호주제 폐지 등 사회개혁의 해법을 제시하는 관찰학자로도 명망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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