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1337~1454) 중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당시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군을 격파한 뒤 여세를 몰아 도버해협에 접한 작은 도시 칼레(Calais)로 진격했다. 칼레시민은 11개월 동안 완강히 저항하다 마침내 항복을 하고 시민들의 목숨만 살려 달라 요청한다. 영국왕은 높은 신분의 귀족 6명을 교수형에 처하는 대신 시민은 살려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러나 누구도 선뜻 ‘내가 죽겠소.’ 하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생피에르가 “내가 6명 중 하나가 되겠소.”라고 말하자 뒤를 이어 시장 등 귀족계급 5명이 동참했다. 다음날 영국왕은 그들을 처형할 것을 명했다. 그러나 당시 임신 중이던 영국 왕비가 왕에게 장차 태어날 아기를 생각해 사면을 강력히 요청하자 그들은 극적으로 살아남게 됐다. 당시의 6명의 용기와 희생정신은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상징이 됐다.

그로부터 500년이 지난 1884년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은 6인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고 10년간 심혈을 기울여 ‘칼레의 시민’이란 조각품을 탄생시켰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부와 권력은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수반하며, 가진 자로서 거만함보다 겸손의 의미가 담긴 용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지금 한국은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얽힌 실타래를 풀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식인, 사회지도층의 책임과 의무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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