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48)

“질병은 없지만 건강이 나빠지면 지금보다 더 불행해 질 것 같다. 104세라는 나이에 이르게 된 것을 매우 후회하고 있다. 이유 불문하고 노인이 삶을 지속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하는 도구로 내가 기억되길 바란다. 죽는 것보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게 진짜 슬픈 일이다.”

지난 5월10일 스위스 바젤의 한 병원에서 안락사를 통해 스스로 104세의 생을 마감한 세계적인 식물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의 말이다.
그가 스스로 선택한 그의 죽음은 전 세계인들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그가 살고 있는 호주가 안락사를 금지하고 있어서 안락사가 허용되고 있는 스위스를 찾아가 치사량에 해당하는 신경안정제 주사를 맞고 운명한 것이다. 주사액을 정맥 안으로 주입하는 밸브를 스스로 열고, 베토벤 교향곡 <합창>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 마지막 소절을 흥얼거리며…

이는 단순히 고령을 이유로 안락사를 택한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죽기 전 그는 “더 이상 내 삶을 지속하고 싶지 않다. 이제 삶을 마감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191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948년 호주로 건너가 대학교수 생활을 하며 평생 왕성하게 생태계 연구에 빠져들었던 그가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84세 때인 1998년. 고령으로 운전면허가 취소되면서 삶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뀌었고, 혼자 움직일 수 없게 되면서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90세가 되어서도 테니스를 할 만큼 타고 난 건강체질을 자랑하던 그였지만, 6년 전인 98세 무렵부터는 몰라보게 시력이 떨어졌고, 100세를 넘어서자 건강이 빠르게 악화됐다.
“내 나이가 되면 아침에 일어나 식사 하고, 점심 때까지 그냥 무료하게 앉아 있다. 그러고 나서 점심을 약간 먹고 다시 앉아 있다. 이런 삶이 무슨 쓸모가 있는가…”
그는 세상 떠나기 전, 이승에서의 마지막 성찬으로 영국 대표음식의 하나인 생선튀김요리 피시 앤드 칩스와 치즈케이크를 먹고, 유언을 남겼다.

“장례식을 치르지 말라. 나를 기억하려는 그 어떤 추모행사도 갖지 말라. 시신은 해부용으로 기부해라.”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 마디를 남겼다.

“나이 50, 60을 지나면 스스로 자유롭게 더 살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마지막 전하고 싶은 메시지 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104세에 선택한 안락사는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우리에게 ‘100세시대’는 축복인가 재앙인가… 이 고령화 시대에 인간은 언제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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