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단체연합, 기본적 가치인 ‘성평등 민주주의’ 실현 촉구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1년이 됐다. 현직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이라는 사상 초유의 상황 속에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인수위원회 기간도 없이 분주히 국정 공백을 수습해 왔다. 촛불혁명으로 세워진 정권인 만큼 현 정부의 지난 1년은 우선적으로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무너진 민주주의 시스템을 복원하는 시간이었다. 최근에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큰 진전을 이루었다. 민주주의의 회복, 한반도 평화 정착은 여성들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도 반드시 실현돼야 할 것이다. 우리 여성들 또한 지난 촛불혁명의 주체로서 이에 대한 활동을 멈추지 않아왔었던 바, 문재인 정부가 이룬 진전에 대해 환영을 표한 바 있다.

촛불광장에서 여성들은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적폐인 ‘성차별’을 청산하기 위해, 새로운 민주주의는 ‘성평등 민주주의’라고 외쳤다. 정치권력의 교체만으로 여성의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성평등’이 빠진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구인지는 올해 초부터 전 분야에 확산된 ‘미투 운동’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미투 운동이 요구하는 것처럼 성별권력관계를 변혁적으로 해소하고,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성차별을 해소해야만 여성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렇기에 여성들은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외쳤고, 문재인 대통령은 ‘성평등한 대한민국’을 국정 과제로,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지난 1년간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에서 ‘성평등한 대한민국’이라는 국정과제는 가시화되지 않았다. 민주주의 회복과 ‘국민중심’에서 ‘여성’은 소외됐고, ‘성평등’이라는 가치와 철학은 보이지 않았다. 집권 초기 인선과정에서 젠더 관점이 부재한 인사에 대해 여성계의 강경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선을 취소하지 않는 등, 인사검증 과정에서 부족한 젠더 관점을 드러낸 바 있다.

여성 대표성 분야에서는 최초로 여성 장관직 임명 30%를 달성했고, 외교부, 고용노동부, 국가보훈처 등 여성 불모지였던 부처에 최초의 여성 수장을 임명해 유리천장을 깨뜨린 점은 어느 정도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최근 남북정상회담 관련 자문위원회 구성이나 대통령 개헌안 마련을 위한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집권 초기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등 국정의 주요한 위원회와 규제개혁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 등 독립된 행정기관인 위원회의 인적 구성에서 여성의 참여 비율은 매우 낮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 여성계의 합의사항이었던 여성대표성 확대를 위한 임명직, 선출직 공무원에서의 남녀의 동등 참여 부분도 대통령 발의 개헌안에서 빠졌다.

미투 운동에 대해서는 정부가 한계 속에서도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1월 말 여성가족부는 검찰 내 성폭력 사건 고발을 계기로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을 내놨고, 이후 미투 운동이 더욱 본격화되자 범정부 차원의 총괄·조정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범정부협의체 구성·운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범부처를 아울러 적극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기에 여성가족부의 권한과 예산이 너무도 부족하다는 한계가 지적됐다. 문 정부가 미투 운동이 요구하고 있는 성차별‧성폭력의 근본적인 근절을 위해서는 전 사회적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미투 운동에 생색내기에만 그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성별권력 구조를 변혁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근본 규범인 헌법에서부터 성평등국가원리가 명기되고 성평등 추진체계의 확립이 필요하나, 개헌과정에서 성평등은 실종됐고, 성평등 추진체계 분야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던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가 아예 국정과제 리스트에서 제외됐다. 여성들의 고용‧노동 상황도 여전히 열악하다. 성별임금격차 등 십 수 년째 세계 최악의 지표는 차치하더라도, 최근 밝혀지고 있는 금융계와 공기업들의 조직적 고용차별은 입직에서부터 여성을 배제하는 뿌리 깊은 성차별을 드러내 여성들을 절망하게 했다.

낙태죄 폐지와 재생산권 보장에 대해서는 청와대 청원에 대한 답변으로 낙태죄가 여성인권을 침해하는 현실을 인지하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였으나, 유엔 인권이사회와 사회권 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등의 낙태죄 폐지 권고 이행 요구에 대해서는 여전히 낙태죄 폐지를 여성의 신체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대립 구도로 상정하고, 사회 각계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사안으로 규정하고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마련도 법무부가 공개한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초안에 ‘성적 소수자’란 이름을 아예 목록에서 삭제해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더 멀다. 문재인 정부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성평등’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특화정책이 아니다. 성평등은 성별권력관계를 드러내고 깨뜨려,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국정운영의 철학이자 기본적인 가치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했던 ‘지속가능하고 성평등한 대한민국’은 이러한 성평등 가치가 일상의 규범이 돼야 가능하다. 앞으로 남은 4년이 문재인 정부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으로서 공약을 지켜가는 시간이 되길 촉구한다.

우리 여성들은 성평등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문재인 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 응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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