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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과 정이 넘치는 한국인의 본향■ 류미월의 문학향기 따라 마을 따라 -전북 고창
류미월 객원기자  |  rhyu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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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1  09:5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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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청보리밭 축제장

오월의 신록은 꽃보다 예쁘다. 나무에 핀 꽃이 후드득 떨어져 수명을 다할 무렵 가만가만 땅을 쳐다보면 냉이꽃, 꽃다지, 민들레꽃, 제비꽃들의 작고 앙증맞은 야생화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늘이 쨍! 투명하고 푸른 날에 걷다 보면 작고 여린 것에 더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가는 것은 웬일인지. 온통 들녘이 초록으로 절정인 고창 땅을 찾았다.
고창 하면 미당 서정주 시인과 청보리밭이 우선 떠오른다. 이렇게 파란 날에 걷다 보면 떠오르는 노래 하나는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송창식이 부른 ‘푸르른 날이다. 송창식 음성으로 익숙한 이 노래는 서정주 시인의 시 ‘푸르른 날’의 가사에 곡을 부쳐서 널리 알려진 노래다.

미당 서정주(1915~2000)는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창작 활동기간만 70년에 이르는 장수 시인이며 천여 편의 시를 발표했다. 우리말을 가장 능수능란하고 아름답게 구사해 한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 시인이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
미당 하면 떠오르는 시구중 하나는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라는 그의 시 ‘자화상’에 나오는 구절이다. 후배 시인들로부터 시의 ‘정부’ 또는 ‘신화’로 불리운 그는 우리나라 시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인인 동시에 대표작이 가장 많은 시인이다. 그의 호 미당(未堂)은 ‘아직 덜 된 사람’이라는 겸손한 마음과 ‘영원히 소년이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있어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 그의 삶과 잘 어울린다.

시 한수 정도 외우긴 힘들어도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중략)...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라고 줄줄 입에서 터져 나오는 시는 바로 국민시 같은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가 아닐까.

   
▲ 미당시문학관

용인에서 4시간에 달려 도착한 고창 땅은 가을에 갔으면 문학관으로 가는 길가나 질마재 언덕이 온통 노란 국화가 한창이었겠지만 봄에 찾은 문학관은 연두와 초록으로 수놓은 신록의 전성기였다. 폐교를 활용한 ‘미당 시문학관’은 소박하고 실속 있는 짜임새가 마음에 들었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문학관 중에는 건물을 너무 거창하게 지어 놓고 내실 없이 꾸며놓고 찾는 이들도 별로 없어서 관리와 유지에 문제가 많은 문학관을 많이 봐와서다.

문학관 계단을 따라가며 벽 구석구석에 잘 전시해 놓은 미당의 업적과 시화, 액자에 담아놓은 사진으로 일생을 따라가며 미당의 시 세계와 인생을 폭넓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곳에서 오랜 시간 일했다는 문학관 해설사로부터 미당의 진면목을 전해 들었다. 일부 독자들은 서정주를 친일 반민족행위자라고 호불호가 갈리지만 문학 자체로만 보면 미당은 큰 산맥과 같은 존재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잘 아는 ‘국화 옆에서’, ‘동천’, ‘자화상’, ‘귀촉도’ ‘떠돌이의 시’가 아직도 많이 애송되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수많은 주옥같은 시가 서정을 자아내며 심금을 울린다. 문학관이 있는 운동장 주변에는 노란 꽃다지가 그리움처럼 먼 산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다.

미당 문학관을 들러보고 산채보리비빔밤으로 허기를 채우고 지인들과 20여분을 차로 달려서 고창군 공음면 학원 관광농원 일원에 마련된 청보리밭 축제장에 도착했다.

누군가 그리운 날엔 청보리밭으로 가자
보리밭 축제장에 들어서니 말(馬)에 화려한 장식을 한 꽃마차가 관광객을 위해 서있다. 마차 관광을 위한 이벤트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 행락객들이 꽃마차를 타고 보리밭 물결이 몰려오는 들녘을 여유 있게 바라보며 신록의 한가운데를 가른다. 청보리밭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해진다. 박하사탕을 먹은 것처럼.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부른다~~’ 문정선의 노래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온다. 괜히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혹시나 누가 내 이름을 부를 것만 같아서다. 밭이 평지가 아닌 구불구불한 경사여서인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운치가 더 하다. 보릿대가 흔들리는 대로 내 마음도 따라 흔들린다.

조금 걷다 보니 원두막이 밭 한가운데 있다. 걸터앉으니 편하고 풍광이 좋다. 동행중 한 사람이 깜부기(보리가 검게 되어 나오는 것. 춘궁기 때 간식으로 먹음.)를 서너 개 꺾어 와서 옛적에 배고팠던 보릿고개 얘기를 하며 추억을 더듬는다. 깜부기로 배고픔을 달래며 친구와 서로 까만 입을 쳐다보며 웃었을 천진한 모습이 상상되다가 웃픈 표정을 지었다. 요즘은 밥 대신 빵이나 국수, 밀가루로 만든 음식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보리밭은 식량도 채워주고 보는 즐거움도 준다. 농촌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경관을 덤으로 주니 피어나는 경관농업이라 하는가 보다.

오르락내리락 보리밭길을 걷다가 가까이서 보리를 자세히 다양하게 살펴봤다. 멀리 청보리밭 너머에는 유채밭이 보인다. 청보리밭과 노란 유채꽃이 파란 하늘 아래 더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그런 사잇길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가벼워 보인다. 밭 한가운데는 베짱이처럼 통기타를 치는 흥을 돋우는 통기타 가수가 7080노래를 부르고 있다. 보리밭을 거닐며 잠시 풍경해 취했다.

축제장을 빠져나오자 먹거리 축제장이 반긴다. ‘고창 땅콩 새싹 생막걸리’, ‘고창 청보리 빵’, ‘고창 복분자 아이스크림’, ‘새싹 청보리 밥’, 닭튀김에 복분자소스를 양념에 섞어 버무린 ’복분자 닭튀김‘등. 여름처럼 더운 한낮에 복분자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주황빛이 도는 보랏빛 아이스크림이 복분자 향을 물씬 풍기며 특유의 입맛을 준다. 청보리 빵은 쫄깃쫄깃하며 보리 향이 좋다. 복분자 닭튀김은 한입 먹고 양념으로 맛을 느낄 때 매콤함 속에 복분자향이 은은히 나며 색다른 닭튀김 맛을 준다. 청보리를 활용한 음식은 농가에 매출로 이어지고 먹는 일은 행복감을 더해 주었다. 맥주 한 잔이 그리워졌다.

고창 땅을 밟고 미당의 시심(詩心)을 가슴에 앉고 청보리 밭을 걷는 동안 그리운 이를 마음껏 그리워하는 행복감을 맛봤다. 행복은 꼭 누군가의 곁에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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