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방창한 자연을 누리며
숨 쉴 수 없음이
너무도 가슴 아픈 오월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열고 오늘의 날씨부터 살핀다, “괴산군 감물면-온 종일 하늘이 흐리고 초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려요. 미세먼지-115 나쁨, 초미세먼지-82 매우 나쁨.”
4월엔 봄이 오다 멈추고 오다 멈추고 눈이 오다가 서리가 내리다가…. 그래도 오는 봄이 고마워 연둣빛 새순과 피어나는 봄꽃에 신이 났었다. 배꽃이 지고 배나무에 약을 치려고 농협 원예기사님을 만났더니 열매가 잘 달렸냐고 묻는다. 바로 적과에 들어갈 참이라고 했다. 기사님은 남쪽이나 중부지역이나 가릴 것 없이 이상기후로 과수원마다 냉해를 입어 열매가 열리지 않아 야단났다고 한다. 듣고 보니 우리집 옆 밭으로 옥수수 모종을 심었는데, 서리로 냉해를 입어 반 이상을 새로 심었다는 말이 생각이 났다. 우린 옥수수를 씨로 조금 심어서 전혀 몰랐던 일이였다.

부랴부랴 집으로 와 나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피었던 매실나무에 꽃이 지고 생겨야할 어린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 꽃 핀 자두나무에도 띄엄띄엄 하나씩 보일락 말락이고, 몇 그루 안 되지만 복숭아며 사과며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배나무는 추위에 강한 편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며 살펴보니 여러 가지 수종 중에 황금배만 그런대로 수정이 돼 열매가 달렸고 주종인 신고배는 열매가 거의 없다. 배농사 지으며 이런 일은 처음이라 황당하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말처럼 농부에게는 하루 봄날의 날씨가 얼마나 간절하고 중요한가! 이상기후에 노출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올 4월엔 최저온도와 최고온도의 차이가 20도나 벌어지는 날이 많아 사람도 기침감기를 달고 살았다. 양도 양털을 반만 깎아 놓고 방치하면 감기에 걸려 죽는다는데, 생명을 가진 식물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농작물도 온전할 리가 없다. 엘리뇨로 인한 불규칙한 이상기후도 이젠 홍수나 가뭄과 같은 재난의 수준이다.

왠지 뿌리가 흔들리는 느낌이다. 이제까지 농촌은 어버이처럼 자식에게 생명의 먹거리를 내어주고 도시인에게 안식과 쉼을 주는 공동체의 마지막 보루였는데, 그것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또 한 가지는 농촌하면 공기 좋고 물이 맑은 곳, 자연의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리는 곳이 아니었을까. 요사이 부쩍 희뿌연 아침, 어딜 봐도 선명하지 않다. 심지어 오늘은 코앞 앞마당의 매실나무가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안개도 한 몫 했겠지만, 해가 났는데도 바로 앞산이 희뿌옇고 그 경계가 또렷하지 못한 것의 정체는 미세먼지다. 할 일이 태산인데도 미세먼지에 갇혀 나가서 일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오후로 가면서 앞산의 초록색이 좀 밝아지고 중턱 골짜기에 송홧가루가 날린다.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윤사월 해길다 꾀꼬리 울면~’이란 박목월의 시가 절로 읊어지건만, 옛날의 그 윤사월은 어디로 가고 바람조차 오염이 됐나 싶다. 숲속에 자리한 우리집은 이맘때면 송홧가루 세례를 받아 장독대며 나뭇잎이며 송홧가루가 먼지처럼 온 집을 뒤덮는다. 몇 년 전만 해도 마당에 깨끗한 자리를 깔고 소나무 가지를 꺾어 노랗고 탱탱한 꽃 몽우리 속의 송홧가루를 털어 모아 다식을 만들곤 했다. 이젠 그것도 추억이 되려나. 요즘은 도무지 할 수가 없다.

땅이 오염되고 물이 더러워지고 공기마저 오염이 된다면 방독마스크를 써야하나?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지리산 깊은 계곡에도 미세먼지가 날아든다니. 아름다운 초록으로 만화방창한 자연을 누리며 숨 쉴 수 없음이 너무도 가슴 아픈 오월의 첫날이 시름시름 가고 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