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33)

봄에 아름답게 돋아나는
연초록 잎새들을 보면서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게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생각…

변덕스러운 추위를 견딘 연초록의 어린 잎들이 앞다퉈 돋아나고 있다. 전 같으면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에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피어나기 시작했으나, 근래 들어서는 그 시기가 4월 하순쯤으로 앞당겨졌다는 ‘관찰기록’들이 나온다. 대구에서 생산되던 능금이 북쪽의 강릉에서도 나오듯이 지구의 ‘온난화’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시기와는 상관없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 연초록의 꿈틀거림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새 힘을 준다. 무엇이나 다 해낼 것 같은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초록색이 아니어도 인간은 주변의 많은 색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색도 다양하지만 인간의 감정은 훨씬 복잡하다. 색과 감정의 관계는 우연이나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살면서 쌓아온 일반적인 사고와 경험에 의해 깊이 뿌리내린 결과물이라 했다. 역사와 문화 등의 차이 때문에 하나의 색에서 여러 가지 인식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원래 녹색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색깔이었다. 그 녹색이 우리 조상들의 옷에 나타난 것은 1300여 년 전이었다. 발해(699~926)시대의 관복(官服) 중에 녹색이 등장하고, 고려 광종 때(960년)의 관복과 1123년의 ‘고려도경’에서도 녹색 옷이 보인다. 조선시대에도 1485년 완성된 ‘경국대전’에 관리의 공복으로 녹포가 나온다. 이 제도가 조선말까지 근근이 이어지면서, 지위가 낮은 말직의 관복으로 이용됐다.
미국도 ‘생명’, ‘생존’과 관련해 녹색을 많이 사용한다. 개척 당시, 새로운 땅에 도착하면 묘목을 심은 뒤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그 나무가 살아 있으면 살 수 있는 땅으로 여겨, 이주했다는 설도 있다. 녹색은 초자연적인 생명체, 에너지원을 나타내고, 안식, 안정, 평화, 치유, 휴식 등을 느끼게 하는 색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수술 중 의사들도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녹색 가운을 입는다. 더 나아가 오늘날의 녹색은 하나의 색으로서 보다 지구의 환경 보호, 녹색행동, 녹색 소비, 녹색 사회, 녹색 기술에 그린피스나 녹색 어머니회까지 ‘용도’가 거듭 늘어나고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일까. 그처럼 ‘쓰임새’가 부쩍 늘면서 녹색은 당초 지니고 있던 익숙함과 이미지가 퇴색되고 있는 현상도 감지된다. 최근의 한 연구조사결과에 따르면, 초록색을 보고 친환경 의식을 느낀다는 사람이 25%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록색에서 사람들은 지난날 같은 정서적 편안함이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과다사용이 그 진실성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녹색이 어느 색과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사실도 밝혀졌다. 예컨대 녹색이 파란색, 흰색과 함께 있으면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파란색, 노란색과 어울리면 희망을, 빨간색과 함께이면 건강함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그러나 녹색이 보라색과 함께 하면 독(毒)이 느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일반적으로 보라색은 신비, 참회, 권력을 나타내는 색인데도 그렇단다. 과다사용도 문제이고, 어느 색과 어울리느냐 하는 것도 신경을 쓰라는 이야기인 듯하다. 이 봄에 아름답게 돋아나는 연초록 잎새들을 보면서,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게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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