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愛 살다 - 전북 익산 ‘강대암농원’ 청년농부 강대암 군

▲ 강대암 군과 아버지 강범식씨

 24살 농원 대표로 아버지 농사 입문시켜
 농식품부 홍보 모델에 블로그도 ‘인기’
 배 농원 4천여 평이 꿈 키우는 자유 공간
 시골교사 어머니 따라 농촌 향수 짙어져

“아버지, 우리 농사지어요~”
“농사는 아무나 짓는 줄 알어! 체력도 좋고, 머리도 좋고, 부지런해야 하는 것이여~,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나오고 취직하는 것이 그나마 제일 쉬운 거여!!”
그렇게 5년 여가 흘렀다.
그 아들은 지금 지역사회가 부러워하는 청년농부로 미래의 꿈을 가꿔가고 있다. 강대암(24) 씨. 전북 익산시 삼기면 용연리 171번지에 자신의 이름 그대로 ‘강대암 농원’을 꾸렸다. 배 밭 13200㎡(4000평)다.

처음부터 크게 시작한 것은 아니다. 2016년 2월 대학졸업과 함께 약 3300㎡(1000평) 규모의 배 과수원을 빌려 본격적인 영농에 들어갔다. 농수산대학에서 어느 정도 기초는 다졌다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배 농장 지인은 다시 한 번 큰 힘이 됐다. 재배기술과 요령부터 농기계 사용까지 하나하나 선생님이 돼줬다.
그렇게 자신감이 붙어가면서 익산에서 직장을 다니던 아버지 강범식(58) 씨까지 농사에 끌어들였다. “아버지가 농사를 짓다가 자식이 함께 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아들 때문에 덩달아 농사를 짓게 됐으니까, 아마 우리 같은 경우는 흔치 않을 겁니다.”

▲ 가지치기와 가지유인작업을 하는 모습

강범식 씨는 지금 강 군의 아버지 이전에 강대암 농원의 홍보부장 겸 농장지기로서 맡은 바 몫을 다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들 농사를 거들어 준다는 정도로만 생각했지요. 그런데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아들이 농사를 대하고 사람들을 마주하는 모습들이 저보다 훨씬 낫더라고요. 언제나 밝고 차분하고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맡은 일에 임하는 태도가 마냥 대견했지요. 지금은 아들 덕에 지역사회에서는 유명인사가 돼가는 느낌입니다.”

배 농사를 지은 첫해부터 제법 성공적이었다. 색깔도 맛도 크기도 모두 좋았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무농약 인증도 받았다. 운도 좋아 수출 길도 열렸다. 조생종인 ‘원황’, ‘화산’ 품종이 원예농협을 통해 캐나다와 대만으로 모두 수출됐다. 또한 중만생종인 ‘신고배’와 ‘감천배’는 지인이나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모두 팔렸다. 내친김에 인근의 과수원도 더 빌렸다. 그렇게 조금씩 늘려간 배 농장은 지금 13200㎡(4000평)에 이른다.

▲ 강 군이 트랙터로 가지치기도 하고, 흙뒤집기를 하고 있다.

그렇게 4년 여가 흐른 지금 강 씨는 영농후계자, 농림축산식품부의 홍보 역할까지 해내며 청년농부의 전국적인 모델이 되고 있다.

청년농부 강 씨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미래 직업으로 농사를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교사인 어머니(오금옥·55·장수고등학교)의 영향을 꼽았다. 어머니가 주로 시골학교에 근무하다보니 강 군도 어머니 따라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시골에서 보냈다. 농촌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동경과 편안함으로 몸에 밴 것 같단다.

특히 고등학교 때 우연히 알게 된 지인이 배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자주 놀러가다 보니 배농사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신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강 씨는 대학 진학을 앞에 두고 주위의 많은 조언들을 들었지만 결국은 한국농수산대학 과수학과에 입학했다.
“막상 농수산대학에 갔는데, 실습시간이 되면 두려웠어요. 생각보다 귀찮은 부분들도 많았고, 과정도 너무 어렵더라고요. 농수산대학에는 영농후계자들도 있었으니까, 그들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죠. 그 당시에 잠깐 농사를 잘못 선택한 건 아닐까 후회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갈수록 재미있다는 생각이 더 많았어요”

강 씨는 스스로, 젊다는 것이 농사의 절대적인 장점 같다고 말한다. 당장에 ‘강대암 농장 블로그’에만 들어가도 금방 알 수 있다. 하루하루의 일과부터 각종 영농일지, 고객들의 후기 등이 적나라하게 강대암 농장의 모든 것을 드러낸다. 신뢰와 소통의 공간이 자연스럽게 열린다. 소비자들이 먼저 다가오고 어느새 친숙한 모습으로 어우러지는 또 다른 농장의 일부로 블로그의 역할이 크다.
청년농부 강대암 군의 꿈은 스스로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해내자는 것이다. 우선 자신 소유의 땅을 어느 정도 확보해 스토리가 갖춰진 배 농장을 하겠다는 포부다. 실제로 영농후계자 자금은 농사지을 땅을 구입하는데 썼다.

그리고 몇 년 더 지나면 관광농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배농사를 기본으로 할 생각입니다. 배는 꽃도 열매도 풍경도 언제나 그림 같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배 농장에도 여러 가지 꽃과 나무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숙박시설이나 카페도 갖춰서 누구나 찾아와 즐거움과 행복도 느끼고 치유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주위에서 농사짓는 것이 좋냐는 질문을 많이 해요. 저는 즐겁습니다. 일은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농사는 스스로 하는 것이거든요. 일하는 것 자체가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모임도 나가고 사회생활도 나름대로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배가 잘 자랄 수 있도록 가지치고 유인하고, 거름을 주고, 경운기·트랙터 소리 요란한 강대암 군의 배밭은 봄날의 나른한 여유와 향기로 온통 가득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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