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愛 살다 - 전북 익산‘왕궁우렁이 농장’

▲ 임춘기 대표와 아들 임상민군.

 아들, 경제학과 졸업 후 한국농수산대학서 새 출발
 “농촌이 창조적 생산지임을 보여줄 것”

▲ 우렁이 양식장 내부 모습.

“처음에는 아들이 농사를 짓는다고 할 줄은 정말로 몰랐지요. 진담반농담반으로 아빠랑 농사짓자고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농사를 짓겠다는 거예요. 참말로~”
“요즘은 4차 산업이니, 6차 산업이니, 융합이니, 뭐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자주 듣다보니 농업의 장래성에 대한 생각들이 언제부턴가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아버지의 뜻도 있고, 농사를 제대로 지어보겠다고 말했죠.”

왕궁우렁이 농장(대표 임춘기·60·전북 익산시 왕궁면 평장리 근남마을)은 임 대표와 아들 임상민 군(27)이 3천 평에 우렁이를 재배하며 부농의 꿈을 일구고 있는 터전이다.
아들 임 군은 올해 전북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한국농수산대학에 입학한 새내기 1학년 농사꾼이다. 취직과 아버지의 뒤를 잇는 농사 사이에서 고민도 많았지만 결국 스스로의 미래가치를 농사에 더 두었다. 농수산대학을 입학한 것도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먹은 김에 전문적인 농사꾼이 돼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들을 농사에까지 끌어들였지만 임 대표도 농사를 잘 알지는 못했다. “언젠가 우연히 강연장에 갔었지요. 농촌의 미래를 설명하는 자리였는데 ‘농촌으로 가라’는 것이 그분의 얘기더라고요. 특히 ‘젊은 친구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미래의 땅이 농촌’이라는 설명은 가슴 깊이 와 닿았습니다.”
그때부터 임 대표는 귀농을 해서 농사짓는 것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이 많아지면서 퇴근 후에, 주말에 시골 고향을 찾는 횟수가 잦아졌다.

▲ 우렁이를 포장하기 직전 작업.

“2013년인가, 퇴직하기 전 우연한 기회에 메기양식 수입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시골 논에 메기양식장을 차렸죠. 하다보니까 자꾸 돈도 투자되고 평수도 넓어지고 그러면서 욕심도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2~3년 준비하다가 본격적으로 은퇴하고, 주력 품종을 왕우렁이로 바꾸면서 정착을 하게 된 거예요. 인자는 다른 방법도 없고, 아들에 아들에까지 대를 물려서 장인정신을 갖고 농사를 이어갈 작정입니다.”

임 대표는 “농촌과 농사야말로 오랜 길을 돌고 돌아 제대로 찾은 나에게 딱 맞는 삶의 현장이고 직업”이라며 자부심도 느낀단다.
임 대표는 고향인 왕궁 근남마을에서 초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전주로 이사를 왔다. 퇴직할 때까지 전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귀농귀촌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했는데, 서울은 못 갈망정 시골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요.”

특히 자식에게 농사를 권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지금도 농사는 다 늙거나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짓는 것처럼 알고 있는 것이 사실 아니냐고 묻는다.
임 대표도 불과 몇 년 전만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던 것이 정년도 다가오고 자녀들이 대학을 가면서부터 강연장에도 다니고 그러면서 다시 농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처음 말한 것처럼 농촌에 답이 있다는 강연을 들으면서 더 확신을 굳혔다.

“당시 아들이 전북대학교에 다녔는데, 늙은 사람보다는 아들 같은 젊은 친구들이 농사를 지으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흔히 IT기술이니 융합이니 하는데, 당연히 젊은 사람을 당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지금 하는 양식농사를 키워서 아들에게 물려주어야겠다고 그때부터 생각을 했습니다.”
곧바로 왕우렁이 양식장을 꾸리기 시작했다. 3천 평 규모니까 큰 맘 먹었다. 그리고 2016년이 막 시작될 무렵 바로 퇴직을 했다.
아들과 아버지는 그동안 직장 등 미래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아들은 주말이면 아버지 농장을 찾아 일손을 거들었다. 양식이 굉장히 과학적이면서도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웬만한 도시의 사업 못지않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임 군은 “친구들이 대학 졸업하고 다시 농수산대학을 간다고 하니까 신기해하더라고요. 농사는 직장 다니다가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또 어떤 친구는 농담 식으로 아버지가 잘 가꿔놓으면 그때 숟가락만 올려도 될 것 같은데 왜 서두르느냐는 것 이었지요.”
아버지의 농사를 도우면서, 농사는 결코 아무나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농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종합예술이더라고요. 전문성과 계속성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어느 하나 쉽지 않은 사업입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기업체나 공무원을 선택했듯이 저는 제 인생의 첫 직장으로 농사를 선택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정년퇴직도 하고 싶고, 또 아버지가 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저도 제 자식에게 더 멋진 농사를 물려주고 싶어서 그 마음가짐의 출발점으로 한국농수산대학을 가게됐습니다.”

“농사는 결코 쉽지도 않고, 가난하지도 않습니다. 젊고 유능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확실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버지하고 함께 농사를 대를 이어서 키워갈 것이고. 그래서 농촌이 도시의 벤처거리 못지않은 창조적 생산지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왕우렁이는 겨우내 동면에 들어갔다가 3월이면 깨어나 활동을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사료를 주고, 새끼를 모종하면서 본격적인 농사철을 맞았다. 논과 밭작물의 다른 농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지금 그렇게 ‘왕궁우렁이 농장’은 아버지와 아들이 가장 바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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