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31)

굳이 새 옷일 필요 없다
있는 것으로 과감히 멋내자
내가 유행을 만들어보자

봄은 가슴 설레게 하는 계절이다. 칙칙했던 긴 겨울을 걷어낸 풋풋한 자연처럼 사람들도 일상의 겉틀을 벗고 싶다. 화사하게 봄을 연출하고 싶은 것이다.
옷장을 활짝 열고 이것저것 들쳐본다. 눈에 들어오는 게 없다. 작년 이맘때는 무얼 입었더라? 장롱 안의 옷들이 “유행이 지났다”고 투덜거리는 듯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이 유행을 무슨 수로 쫒아간단 말인가.

이런 소비자들을 흔드느라, 세계의 디자이너들은 1년 전부터 내년 봄 새로운 ‘유행’을 겨냥해 수많은 옷들을 발표한다. 소위 패션 트렌드를 예측하는 거다. 그러나 그 어떤 천재 디자이너라 할지라도 그 다가올 ‘유행’을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의 예측이 유행에 적중하길 바라며 의견을 제시할 뿐이다. 물론, 이 봄의 유행을 찾기 위해 지난 가을, 세계적 디자이너들은 ‘2018년 봄/여름 패션쇼’를 통해 수많은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것들을 모아 분석하고서, 어떤 전문가(허핑턴포스트의 편집)는 베레모, 보라색, 장식귀걸이, 긴 트임, 순면 청바지, 넓은 통바지, 들여다보이는 양말, 여러 무늬의 믹스&매치, 코듀로이(속칭 고르뗑)등을 트렌드로 ‘점’ 쳤다.

다른 한 전문가(패션 엔 미디어를 편집)는 페니 백(penny bag: 동전 넣는 가방으로 허리에 벨트처럼, 또는 어깨에 사선으로 메기도 함)차림, 브랜드의 로고, 속 비치는 겉 상의, 블루진, 파스텔과 핑크 색, 술 장식, 끈 장식, 세로 줄무늬와 체크, 반짝거리는 얇은 장식 조각 등 그리고 검정과 흰색을 올 봄과 여름의 패션트렌드라 분석해 놓았다.
 이외의 많은 전문가들도 나름의 분석을 했다. 그러나 어떤 것은 중복되기도 하고, 블루진, 핑크나 파스텔 톤의 색상, 그리고 여러 무늬의 믹스 엔 매치 등은 약간씩의 변화가 있을 뿐 큰 틀에서는 거의 매년 반복됐던 것들이다.

이 밖에도 참으로 엉뚱한 것들도 있다. 어글리 패션(ugly fashion),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은 가라! 못생긴 것들의 시대가 왔다!’는 주장이다. 아버지의 커다란 재킷, 할머니 스웨터 같은 전혀 맞지 않는 옷들을 입고 어글리 패션이라 자랑하는 거다. 놀라운 것은 구찌나 발렌시아가 등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도 어글리 패션의 열풍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패션 트렌드는 헌 옷 가게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그러나 이것들 역시 이미 다 휩쓸고 지나갔던 유행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옷장 안의 내 옷들이 위에서 열거한 여러 가지 것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페니 백만 해도 그렇다.
몇 해 전 등산이나 해외 여행할 때 여권이며 돈을 잘 보관하느라 허리에 찼던 벨트색이다. 아버지, 어머니 또는 내가 쓰다 버리지도 못하고 어느 구석엔가 숨어있을 그 작은 백 말이다. 그것을 이번 봄엔 등산용이나 여행용이 아닌, 외출복, 파티복, 어디에도 당당히 매치시키면 되는 거다.

속 비치는 겉 상의나 비치는 양말도 그렇다. 안이 들여다보이는 얇은 천을 어느 곳에나 이용해보면 된다. 그것도 어렵다면 머플러처럼 감기만 해도 이봄의 트렌드다. 굳이 새 옷일 필요 없다. 있는 것으로 과감하게 멋을 내보자. 그리고 내가 유행을 만들어보자. 디자이너가 아니라 수많은 ‘내’가 모여 유행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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