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민족과 고추의 핫(HOT)한 역사

고추는 과연 언제부터 우리네 식탁에 올랐을까. 대부분의 논문에 따르면 임진왜란 이후 일본을 통해 고추가 들어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박이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매화홀에서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주최로 ‘제21회 식량안보세미나 고추의 이용 역사’에 대한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한국식품연구원 권대영 박사는 “고추가 임진왜란 이후에 들어왔다는 것에 대해 아이러니한 점이 많다”고 밝혔다. 과연 우리가 즐겨 먹는 고추가 언제부터 우리와 함께 했는지 자세히 알아보자.

고추 유입, 임진왜란 이후VS이전으로 나뉘어
조선시대 약으로 쓰이던 고추…영조에 처방

고추와 우리의 관계
현재, 많은 사람들이 전통장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고추장과 된장 등은 주식처럼 이미 우리의 식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식품이 됐다. 또 고춧가루를 이용해 매년 겨울이면 김장을 담근다.

▲ 권대영 박사.

고추는 우리나라에서 약 3만 톤 정도 생산되고 있으며, 소비는 20만 톤으로 세계 1위를 기록할 만큼 막대하다. 과거 조상들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우리는 오랫동안 쌀밥을 먹고 있고, 쌀밥의 담백한 맛과 조화를 이루는 자극적인 향신료를 원한다. 그 중 향신료로 가장 많이 소비된 것이 바로 이 고추다. 부식임에도 불구하고 고추가 우리에게 중요시 되고 있는 것은 독특한 매운맛 때문일 것이다. 매운 것을 먹는 나라는 많이 있지만 스트레스 해소방법 등의 특징처럼 자리 잡은 나라는 우리나라뿐일 것이다.

이날 ‘고추의 이용 역사’ 세미나에서 좌장을 맡은 조재선 경희대학교 명예교수는 한 연구결과를 언급하며 “고추가 속을 편하게 해주고 적당량을 섭취할 경우 건강에 이롭다는 학설이 있다”고 주장했다.

건강만큼이나 입맛을 돋우는 데도 효과적인 고추. 먹으면 먹을수록 당기는 맛인 고추를 이용한 음식은 떡볶이와 비빔밥 등 가짓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이처럼 고추는 우리의 식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음식이 됐다. 그렇다면 고추는 언제부터 우리 역사에 기록됐을까.

고추의 역사를 살펴보자
조선시대 왕 중에서 유일하게 80대까지 산 것으로 알려진 영조는 입맛이 없거나 속이 불편할 때 고추를 이용한 음식을 먹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점은 고추를 이용한 음식을 올린 것이 수라간이 아닌 내의원의 처방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고추는 정확히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 이미 고추는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에 들어왔다는 기록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권대영 박사가 이에 대한 반박을 제기했다.

권대영 박사는 전북 순창 출신으로, 학창시절 부모로부터 고추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날 권 박사는 “내가 부모님으로 부터 들었던 고추의 역사는 이성계가 무악대사와 함께 고추장으로 비빈 밥을 먹었다는 이야기”라며 “하지만 학창시절 고추가 임진왜란 시절 처음 들어왔다는 것을 듣고 많은 궁금증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성계는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보다 훨씬 이전인 1408년에 생을 마감했기에 이 학설은 권 박사의 궁금증을 더욱 가중시켰을 것이다.

이어 그는 대학시절부터 전문적으로 고추의 역사에 대한 기록을 찾기 시작했다고 말하며 1613년에 쓰인 지봉유설을 언급했다. “지봉유설을 들여다보면 남만초를 술에 타먹고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며 “이 당시에 기록될 정도의 사건이었다면 임진왜란 훨씬 전에 일어난 사건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여기서 남만초의 남만은 중국 오랑캐로 해석되며, 만초는 태국고추를 의미한다고 권 박사는 설명했다. 즉, 남만초는 여러 고추 중의 하나인 것이다.

조금 더 흥미로운 역사를 들여다보자. 일본은 고추로 만든 식품이 없는데, 임진왜란 때 들어온 것이 말이 되는 가설일까. 거기에 대한 대답으로 일본이 우리 민족을 독살시키려고 고추를 갖고 왔다는 가설이 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조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인들을 독살 시키려고 고추를 갖고 온 것은 믿기 힘든 이야기라고 권 박사는 말했다.

아울러, 일본문헌인 대화본초와 물류칭호, 성형도설, 왜훈간 등을 살펴보면 1605년에 조선에서 고추를 들여와 ‘고려호초’라고 부른다는 기록돼 있다. 호초는 일본 말로 고쇼로 현재의 고추와 유사한 발음을 갖고 있다.

한편, 이날 권대영 박사의 주제발표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권대영 박사의 해석에 대한 정확한 근거를 원하는 교수와 권대영 박사의 해석을 더 탐구해야한다는 심도 있는 토론이 이어졌다.

고추는 오랜 시간동안 우리의 식탁을 지킨 향신료이자 맛있는 식품으로 재탄생됐다. 아직까지 고추의 대한 정확한 역사를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앞으로 많은 문헌을 통해 고추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경로 등 고추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게 된다면 고추를 이용한 더 맛있는 요리들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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