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청국장 냄새 풍겨올 때
할머니의 사랑 유전자는
후대로 계속 이어진다

오늘은 집안보다 햇볕 좋은 바깥이 훨씬 따뜻하다. 오래된 친구가 내 생일이라고 전화를 했다. 대장암으로 작년부터 수술과 항암치료로 고생 중인데, 이제 항암치료 두 번 남았다고 한다. 입맛도 없는데다 마트에서 파는 청국장, 생콩가루가 맛이 없어서 영 못 먹겠다며 부쳐달란다. 우리 마을에 늘 청국장을 만들어 파는 어르신께 부탁하려고 흔쾌히 응했다. 그런데 그 어르신도 몸이 아파서 병원에 다니시고 마을에는 아무도 청국장을 하지 않았다. 맘을 고쳐먹고 직접 만들어 주기로 했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유난히 청국장을 좋아했다. 때 이른 초봄이면 멀리 나가 있던 삼촌도 고모도 우리 집에 청국장을 먹으러 왔다. 내 생일을 핑계로 모여선 미역국보다 고기와 묵은 김장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얼큰하게 끓인 청국장을 온 식구가 즐겼다. 엄마는 청국장을 끓일 때마다 시어머니(내 친할머니) 솜씨를 자랑하셨다. 할머니가 청국장을 끓이는 날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문간에 줄을 섰었고, 동네 뉘집 잔치가 있으면 할머니께 미리 예약을 해야 할 정도였다.

할머니는 까무잡잡한 얼굴에 자그마한 키, 항상 하얀 앞치마를 허리에 한 바퀴 돌려 야무지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인물이 박색이라고 할아버지께 홀대를 받으며 육남매를 혼자 키워내셨다.
6.25동란 때 아버지는 해군에 입대해서 진해로 오게 됐고 그때 중매로 엄마는 열아홉 나이에 시집을 왔다. 내 엄마는 친엄마를 세 살에 여의고 아주 억세고 강팍한 계모를 만나 이복동생 여섯을 업어 기르며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그 큰 집에서 완전히 식모처럼 살아야했다.

그 계모할머니는 자신이 후처인 것을 모두에게 감췄고 그래서 전처의 딸을 없는 사람 취급을 했었다. 중매로 상견례를 하는 자리에서 할머니가 맏며느리감을 보니 인물은 뽀얗고 얌전하고 키도 큰데 입성이 형편없더란 것이다. 계모 밑에서 사람대접 못 받고 자란 게 할머니 눈에도 보였나 보다. 혼삿날을 받아놓고 매일 밤 엄마가 자는 방 바깥 창문을 두드리고 아무도 몰래 결혼에 필요한 치마저고리, 속치마 속바지, 버선 등 기본적인 것부터 보자기에 싸서 넣어주고, 시집갈 때 신부가 준비해야할 혼수까지 밤마다 준비해 넣어주셨다고 한다. 모정을 모르고 자란 울 엄마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이었다.

엄마는 시집 와서 난생 처음 돼지고기가 들어간 청국장을 먹고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났었는데, 그 나이가 되도록 돼지고기를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계모 밑에서 눈물로 커 온 며느리를 너무도 잘 품고 다독여주셨다 한다. 내가 태어나 네 살이 되던 해에 혈압으로 쓰러져 일찍 돌아가신 할머니. 엄마는 늘 그 사랑을 잊지 못했다. 임신 중에 누군가를 많이 생각하고 많이 보면 뱃속의 아이가 그를 닮는다고 하지 않던가? 아뿔싸. 내가 할머니 박색의 용모만 빼닮은 것이었다. 아버지가 한 번 꾸지람 없이 나를 키우신 것, 삼촌들도 할머니가 보고 싶으면 나를 보러 온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엄마는 살빛도 희고 키도 크고 아버지도 얼굴이 검기는 하지만 갸름하고 콧날이 오똑한 데 너는 도대체 누굴 닮았냐고 놀리셨다.

나중에 아버지는 “넌 할머니를 빼닮았어. 계차유전을 한거지. 한 대를 뛰어 넘어 유전을 한거야.”라고 말씀하셨다. 얼굴은 둥글납작하고 까만 피부에 퍼진 콧망울을 한 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이 얼굴 속에 할머니가 계실까? 이제 모두 가고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러나 다시 생일이 오고 청국장을 끓이는 냄새가 풍겨 올 때 나는 내 아이들과 긴 이야기를 나눌 것이고, 할머니의 사랑 유전자는 후대로 계속 이어져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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