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생활속 발명이야기-글 왕연중·그림 김민재

88서울올림픽 이후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문화 중 가장 관심을 가진 것 중에 하나가 음식문화였다.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다양한 전통 음식문화에 감탄했다. 그중의 하나가 떡볶이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즐겨먹는 떡볶이는 새로운 음식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떡볶이연구소가 생긴 것은 이미 오래 전이고, 새로운 조리법의 발명은 특허를 받아 브랜드 시대를 열며 프랜차이즈화 되기에 이르렀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깨끗한 인테리어 된 점포 안 메뉴로 바뀐 것이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중국과 유럽에도 떡볶이 특허기술이 수출되고 있다.
떡볶이가 언제 누구에 의해 발명됐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시대 요리의 장인으로 불리는 대장금이 발명했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떡볶이는 궁중음식 중의 하나였고, 매우 귀한 고급 음식이었다. 실제로 설날 아침 임금에게 올린 음식 중에도 떡볶이가 포함돼 있다. 당시 궁중떡볶이는 맵지 않은 음식이었다. 아직 고추가 없던 시절이어서 나물과 소고기에 간장을 넣고 볶은 것이었다.

현대판 떡볶이는 마복림 여사의 발명
지금처럼 먹음직스럽고 맛있는 떡볶이는 1953년 마복림 여사에 의해 발명됐다. 오래전 마복림 여사를 직접 만나 취재한 기자에 따르면,  1950년 6·25 전쟁으로 3년 동안의 피난 생활로 살기가 힘들었던 시절, 마복림 여사는 귀한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중국집을 찾게 됐다고 한다. 이때 개업식 공짜 떡을 집다가 그만 짜장면 그릇에 빠뜨렸는데, 그 떡 맛이 일품이었다고 한다. 바로 여기서 고추장을 떠올려 새로운 떡볶이 연구를 시작하게 됐고, 그것이 결실을 맺어 현대판 떡볶이를 발명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마복림 여사의 떡볶이가 지금도 유명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고, 신당동이 우리나라 떡볶이의 명소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도 마복림 여사의 명성 때문이었다. 1970년이 되면서는 그 당시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MBC ‘임국희의 여성 살롱’과 신문·잡지까지 앞다투어 신당동 떡볶이 골목을 소개할 정도였다.

이제 프랜차이즈는 물론 고급 식당이나 카페에서도 정식 메뉴로 자리 잡은 떡볶이의 영문표기는 ‘Tteokbokki’였다. 세계화하기엔 철자가 너무 길고 복잡해 정부는 떡볶이 영문표기를 ‘Topokki’로 정하고, 세계적인 식품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첫 결실이 수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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