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30_

 ‘안경선배’의 안경이
 사랑받는 이유는
 피나는 노력이
 아름다웠기 때문…

인구가 줄어 행정구역에서 없어질 대상 1호인 시골 마을의 컬링선수 아가씨들이 올림픽 기간 내내 만인의 시선을 끌고 다녔다. 그녀들의 얼굴표정, 몸짓, 말투, 용어, 환호에 이르기까지 모두의 관심이었고 즐거움이었다.
올림픽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그녀들은 우리 모두의 ‘영웅’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그런 그녀들을 따라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현상이지만, 그녀들이 쓰고 나왔던, 평범하기 그지없던 그 안경이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분 좋은 이야기다.  

우리들에게는 안경에 얽힌 예쁜 추억이 있다. 어린 시절 한 친구가 안경을 쓰고 나타났을 때, 그는 갑자기 스타가 됐다. 흘러내리는 안경 한쪽을 살짝 들어 올리는 모습, 안경을 벗어 손가락 사이에 끼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모습, 안경다리 하나를 입술에 무는 모습까지 멋있어 보였다. 안경 쓴 친구가 얼마나 부럽던지, 그 친구의 주위를 맴돌며 한번 얻어 써보려고 애를 쓰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안경이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옛날의 안경은 크리스털, 석영 등으로 만든 렌즈였는데, 빛을 모아 불을 태우는 용도로 사용됐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를 거치며 광학이론이 세워졌고, 11세기에 이르러 유럽 수도사들이 글을 읽기 위해 처음으로 안경을 썼다. 이후 귀족들의 사치품으로 애용되다가 15세기경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발명되면서 일반대중에게도 보급돼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 안경이 들어온 것은 16세기 후반으로, 일본에 통신사로 건너갔던 김성일(1538∼1593)이 쓴 게 처음이라고 전해진다. 정조도 안경을 썼다. <정조실록(1799)>에 의하면 안경을 끼고 조정에 나가느냐 마느냐 하는 고민을 했던 기록이 있다. 안경과 관련한 예법이 매우 까다로웠기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나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 앞에서 안경을 쓰면 안 됐다. 대중이 모인 자리나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안 됐다. 임금일지라도 신하들과 함께 정사를 보는 자리에서는 안경을 쓰지 않는 것이 예의였다. 오죽하면 안경 예절 때문에 스스로 인생을 끝낸 사람이 다 있었을까. 조선 제24대 헌종의 외삼촌이자 이조판서를 지냈던 조병구는 고도근시였다. 본의 아니게 왕 앞에서 안경을 쓰고 있다가 두 번이나 헌종의 꾸지람을 들었다. 헌종은 자신이 어리다고 신하가 무시해 안경을 끼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조병구는 두려움에 떨다가 그날 밤 끝내 목을 매고 말았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컬링대표팀 김은정, 김선영 선수가 쓴 안경테가 동이 났단다. 경기 중에 김은정 선수가 스톤을 던지고 나서 ‘영미’를 외치는 얼굴이 중계화면에 클로즈업되면서 ‘안경선배’라는 애칭이 생겼고, 미국 USA투데이는 ‘김은정은 안경을 쓰고 빙판을 지배한다’고 썼다. 안경 쓴 그 모습이 세계인의 관심을 모은 것이다.

두 선수가 쓴 안경은 지난해 대구의 한 안경점에서 맞춘 것이라 했다. 세계 명품 브랜드의 안경도, 패션 안경도 아닌,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안경이 이렇게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그것을 쓰고 우리를 기쁘게 한 그들의 피나는 노력이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예뻐 보이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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