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남성사회에 던지는 경고장 ‘미투’

▲ 지난 2일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미투운동’을 지지하기 위해 서울시 광화문 일대에서‘#MeToo, #WithYou 우리는 끝까지 함께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집회를 진행했다.

#Me_Too(나도 당했다)운동은 성폭력과 성희롱 행위를 비난하기 위해 SNS에서 시작된 해시태그 캠페인이다. 할리우드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투운동은 이제, 미국사회뿐만 아니라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현직 검사인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의 성폭력 실상을 고발하면서 미투운동은 문화예술계를 거쳐 사회각계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도시보다 심각한 가부장적 사회에 살고 있는 농촌여성들은 자신의 피해를 공개적으로 고백하기 보다는 숨기기에 급급한 현실이다.

 농촌, 가부장적 사회분위기가 피해자 만들어
 성희롱․성폭행, 권력구조 넘어선 사회문제

농촌 속 성폭행 피해자
고령·이주여성이 대부분

농촌은 외부와의 단절로 인해 성희롱·성폭력 피해가 더욱 극심하다. 현재 ‘미투운동’에 동참한 이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도시에 직장을 둔 여성들이다. 농촌여성들은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지 않고 몰래몰래 사건을 해결하고 있다. 이처럼 가부장적 사회 속 자신의 피해를 공개했을 때 동네를 떠나야 하는 불이익 등 다양한 이유로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외국인노동자는 거처와 수익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더욱 숨긴다. 최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실시한 ‘이주여성 농업노동자의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12.4%가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 순천대 박옥임 명예교수

이와 관련 1997~2008년까지 10년 간 전남성폭력상담소를 운영하며 농촌의 성폭력 피해여성들을 구제한 순천대학교 박옥임 교수로부터 농촌의 성폭력 피해사례를 더 자세히 들어봤다. 박옥임 교수는 “농촌의 할머니들이 성적 피해를 많이 당한다”며 “지난번 78세 여성이 성폭력 상담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아들 친구에게 성폭력을 당한 뒤, 경찰에 신고했지만 며느리가 오히려 ‘자랑도 아닌데 뭐하러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느냐’며 피해여성을 나무랐다. 며느리를 상담하는 게 더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농촌은 폐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에 얽매여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가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고 박 교수는 말했다. 당시 사건은 40대였던 가해자가 피해여성이 혼자 살고, 도움을 청할 곳이 마땅치 않아 문제되지 않을 거란 생각에서 비롯됐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특히, 결혼 못한 남성이 농촌에 많고 남편과 사별한 고령여성이 많은 농촌사회에서 힘없는 고령의 여성들은 쉽게 타깃이 된다고 말했다.

너도 나도, 목소리를 내다
지난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 110회를 맞이한 날이다. 하지만 흘러간 시간과는 반대로 여성을 향한 가부장적시선은 여전하다. 특히나 가부장제도가 깊게 뿌리박힌 농촌여성들은 ‘미투운동’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한다. 도시보다 이웃 간의 사이가 가깝고, 유교사상이 더욱 강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릴 적부터 부모님을 통해 배운 사고방식으로 ‘남의 탓보다는 나의 탓’을 하며 성희롱과 성폭행 피해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있다.
농촌으로 결혼 온 다문화 여성들도 언어가 서툴고 외부와 단절된 농촌의 특수한 상황을 이유로 성희롱·성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결혼 상대만 믿고 한국으로 이주했지만 원치 않는 상황에서 강제로 이뤄진 성관계 등으로 성폭행의 피해자가 된 사건도 많다. 지난 1월,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부통신망인 ‘이프로스’에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용기 있게 폭로했지만 여전히 농촌여성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이제 미투운동은 도시를 넘어 농촌에서도 불붙어야 한다. 자신의 피해를 자신의 잘못처럼 여기며 속으로 앓고 혼자서 해결할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폭력성을 공개해 농촌사회로부터 격리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더 나은 사회 위한 여성들의 목소리 “#Me_Too”

 文대통령 “미투운동 관련 가해자 엄벌해야”
‘미투운동’이 성평등 사회 이루는 단초돼야

불편한 진실, 이제 바로잡자
각지에서 ‘미투운동’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이에 대해 차가운 반응을 보이는 남성들도 여럿 존재했다. 한 20대 남성은 “미투운동으로 인해 죄 없는 남성이 피해를 받을까봐 걱정”이라며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아직 죄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가해자라 단정 지으며 범죄자 낙인을 찍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남성처럼 몇몇 남성들과 장년층은 미투운동을 통해 용기를 내고 있는 여성을 꽃뱀 혹은 거짓말쟁이로 몰아가고 있다.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기보다는 가해자의 입장에 서서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일 JTBC ‘뉴스룸’에서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정무비서였던 김 씨가 출연해 안희정 전 도지사의 성폭행을 고발하며 “제가 오늘 이후에 없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권력관계 속에서 발생한 성폭행은 위계와 위력이 점철된 사회구조 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에게 귀 기울이며 ‘With_You’를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여성가족부 장관이 위원장이 되는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 협의회’에 참석해 협의회 운영계획과 직장, 문화예술계에서 범해지고 있는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근절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논의를 진행했다.

미투운동, 권력관계에 국한돼선 안 돼
몇몇 여성들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성은 약자 혹은 부수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제 고정관념 속에서 살아오던 여성들이 점점 자신의 권위를 찾아가고,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혀 가해자의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여·야당에서는 ‘미투운동’을 지지한다고 말하며 그와 관련된 다양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지난달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미투운동’에 대해 “강자인 남성이 약자인 여성을 힘이나 지위로 짓밟는 행위는 가해자의 신분과 지위가 어떠하든 엄벌에 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부와 각 기관 단체는 미투운동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내놓고 있다.

특히,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성희롱·성폭력 근절 보완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피해여성을 보호하는 관련 제도를 안내하고 성차별적 직장문화를 개선하고자 캠페인도 준비하고 있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들이 신원노출에 따른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가명조서’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조서의 당사자 정보는 신원관리 카드에 따로 작성돼 피의자가 볼 수 없으며, 경찰 수사단계에서도 담당 형사만 열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아울러, 피해자 지원기관의 피해자 상담기록지 또한 가명으로 기입할 수 있게 된다. 한편,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전국미투지원본부’ 발족을 지난 8일 선포했다. 전국미투지원본부에는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과 한국심리학회 등이 참여해 피해자에게 법률과 심리치료 등을 지원하게 된다.

한편 전북농업기술원은 지난 7일 직원 1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희롱 등에 관한 예방 교육을 실시했다. 이날 교육은 최근 미투운동으로 이어져 각계각층에 번지고 있는 건전한 성문화와 양성평등문화 실현에 발맞춰 공무원 조직부터 건전한 직장문화를 조성하고 행복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마련됐다.

현재까지 밝혀지고 있는 피해의 대부분이 도시에서, 그리고 권력을 쥔 남성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여성들을 성폭행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때문에 미투운동을 직장내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로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옆집 이웃, 대학동기, 지나가는 행인 등 권력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성희롱과 성폭행이 빈번히 일어나고, 여전히 피해를 당한 농촌여성들은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힘들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미투운동’은 성폭력과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방법 중의 하나다. 이번 미투운동이 도시와 농촌 할 것 없이 피해자를 치유하고, 여성을 약자로 여기는 성차별 문화를 깨뜨릴 수 있는 초석이 되길 바란다.

■  현장스케치-‘신여성 도착하다’토크콘서트

▲ 국립현대미술관 멀티프로젝트홀에서 지난 2일 과거 신여성들의 활동을 조명한 ‘신여성 도착하다’ 전시회를 연계해 문화예술계 5인의 패널과 250여 명의 관객이 토론회를 가졌다.

여성의 현재·미래에 대한 방향점 제시

‘미투운동’은 현재 가장 뜨거운 관심 속에 전개되고 있다. 문화예술계를 넘어 정계, 학계, 종교계까지 각계각층에서 피해여성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와 관련, 여성가족부는 국립현대미술관 멀티프로젝트홀에서 ‘신여성 도착하다’ 전시회와 ‘미투운동’을 연계해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현대미술가 정은영, 페미당당 사회운동가 심미섭씨 등이 자리했다.
정은영 현대미술가는 한국사회에 잔재된 가부장제에 대해 권위자와 조력자로 나뉘는 성별의 이분법을 지적하며 “허울 좋은 양성평등의 함정을 깨닫고, 성별 규정의 부조리함을 지속적으로 폭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역사적인 신여성이 알려지고 전시돼 그로부터 100년이 지났지만 현재에도 ‘미투운동’이 대두되고 있다”고 현 사태를 꼬집었다.

페미당당 사회운동가인 심미섭씨는 “현재 미투에서 촉발된 ‘위드유 운동’을 통해 많은 여성들이 ‘나도 그랬다’며 속이야기를 꺼내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힘든 시기지만 ‘미투운동’으로 인해 어두운 시기를 넘어서 더욱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날 ‘신여성 도착하다’ 토론회는 20세기 신여성들의 활동을 돌아보고 현재 21세기 여성들의 ‘미투운동’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과 사회문제를 나누는 공감의 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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