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愛 살다 -‘파파스팜(아빠의 농장)’의 피아니스트 가수 농부 김동옥씨

산과 산을 사이로 약간의 지평선이 놓여진 곳.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어릴 때부터 우리들 동화책 기억 속에 어딘가 낯이 익은 집 한 채가 반갑게 다가오는 곳. 허기진 비닐하우스 두개와 꼬물꼬물 강아지들이 우르르 반겨주는 곳. 그 양 옆으로 드리워진 야트막한 숲 속에는 300여 마리에 달하는 ‘백봉 닭’이 풀숲을 헤집으며 먹이를 쪼고 있는 곳. 마당에는 된장과 간장, 청국장이 가득한 항아리가 운치를 더해주는 곳. 전북 임실군 신덕면 삼길리 403-1 독적골 마을 깊숙한 곳에 자리한 ‘파파스팜(아빠의 농장)’이다.

 아로니아·블루베리, 산약초로 담근 된장·간장은 ‘인기 최고’ 
 하모니카·기타·피아노 선율에 맞춰 별 헤는 밤들이 곧 행복 
 마당 옆 개울엔 미꾸라지·동자개·참붕어 등 먹거리 풍성 

“여기는 농장이름 없나요? 간판도 없고?”
“우리 딸이 지어준 이름이 있긴 한데, ‘파파스팜’이라고 ‘아빠의 농장’이라나 어쩐다나 그려요” “이곳에 자주 오는 주변의 지인들도 여기 이름 몰라요. 그냥, 그냥 한 번씩 찾아주는 그런 곳이에요. 그렇게 지인들과 조금씩 나눈다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지요” “여기 있으면서 몸과 마음 편하고, 어쩌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서로 도와주면서 먹고사는 것이죠. 돈은 못 벌었어도 인생은 크게 남는 장사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장의 이름은 김동옥(金東玉) 씨(59). 언뜻 작업복 차림의 거친 농부처럼 보이지만, 얘기를 나누다보면 아기자기 부드럽고 섬세하고 다정다감하고, 한없이 여려 보이는 구석이 많아 금방 정이 가는 스타일이다.
김 씨의 안내로 집안에 들어서니 큼직한 피아노가 두 대나 반겼다.
“야! 이런 촌에도 피아노가 있네요. 혹시 연주도 하나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쇼팽, 베토벤의 선율이 강물처럼 쏟아진다. “젊어서 피아노 대리점을 했어요. 한때는 가수가 꿈이기도 했지요. 그래서 피아노는 물론이고 기타, 하모니카 등 웬만한 악기는 조금씩 다룰 줄 압니다.”

그래서 김 씨는 동네 사람들에게 ‘피아니스트 가수 농부’로 불린다. 지금의 아내도 피아노 대리점을 하면서 만난 손님이었다. 아내에게 첫눈에 반해 운명처럼 결혼까지 하게 됐다지만, 김 씨의 피아노 솜씨가 분명 한몫 거들었을 것임은 누구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다시, 마당으로 나왔을 때는 산 속에도, 개울에도, 뒷마당에도 온통 닭과 강아지들이 한데 어울려 먹이를 쪼는 모습들로 부산했다. 앞마당을 가로 지나서는 아로니아 농장이 곱게도 펼쳐져있다.
“저 많은 닭들이 마당이나 하우스보다는 산속에 더 많이 흩어져있는데, 개도 많아 보이고요. 닭을 잃어버리기도 할 것 같은데, 관리하는데 어려움은 없나요?”

“비가 오거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두지 않습니다. 때 되면 즈그들끼리 들어오기도 하고, 또 나가기도 하고 그래요. 주변이 온통 산이고 개울이어서 야생의 동물이 많지요. 개와 닭을 함께 키우면 주변의 수달이나 족제비, 맹금류 등이 범접을 안 해요. 그래서 우리같이 방목으로 하는 농장은 개가 큰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김 씨가 이 깊은 산골까지 오게 된 데는 무작정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아내는 척추협착증 그리고 김 씨에게는 협심증이 찾아왔다. 그래서 주저 없이 택한 것이 공기 좋고 물 맑은 이곳 독적골 마을이었다.

“독적골이 무슨 뜻인지도 잘 몰라요. 마을 사람들조차도 모르더라고요. 좀 유식한 지인이 하는 말로는 옛날에 그릇을 굽고 쌓아두는 곳이었을 거라고, 그래서 아마도 독적골이라 불려졌대요.”
2012년 2월에 귀농해 황무지를 일구고 집을 지었다. 블루베리 아로니아를 심어 간단한 생활비를 벌었다. 아내와 자신을 위해 메주, 간장, 청국장을 담그기 시작했다. 매일 산에 올라 근육경련에 좋다는 토복령과 요통에 좋다는 우슬 등 귀한 약재들을 채취해 우려낸 물로 약초 된장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건강에 좋다는 백봉닭도 한두 마리씩 사다 키운 것이 지금의 농장이 되었단다.

“힘들 것은 없고, 블루베리 등 찌꺼기와 주변에서 나는 온갖 산약재들을 그냥 먹이로 주기도 하고, 효소를 만들어서도 주고, 근처의 이웃에서 버려지는 쌀조각이나 산약초 찌꺼기 등도 가져다주고, 닭들이 산에서 먹이 줍다가 저녁되면 다 들어와요. 그리고 먹이를 주면 또 알아서 들어와요”
백봉닭과 계란이 주 수입원이 되고 있지만, 어쩌다 이곳에 놀러오는 사람들은 백봉닭에만 열광하는 것이 아니란다. 바로 옆 개울에서 바로 잡아내는 미꾸라지와 동자개, 참붕어들까지 요리로 내어놓으면 모두가 할 말을 잃고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돌아간단다.

“지금은 자식들도 다 장성했고, 아내도 나도 모두가 건강을 되찾아서 아무런 불만도 없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행복해지는 것이 소망입니다”
계란 몇 개 사들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절로 가벼웠다. 김 씨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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