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지루한 겨울을 마감하기를
 그에게도 우리에게도 
 따스한 봄이 어서 오기를 
 소망해 본다~"

얼음이 녹은 강물 위로 물결이 인다. 아직도 하얗게 얼음장이 덮여 있어도 흐르는 강물을 보니 이제 다시 봄날의 희망 같은 것이 솟아오른다. 흐린 하늘 아래 마당 매실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걸 보니 바람이 부나보다.  아침을 먹고 누비점퍼에 긴 장화, 털모자를 쓰고 전지가위와 톱이 달린 군용벨트를 허리에 차고 남편이 배나무 가지를 치러 나간다.
현관 전신거울에 자기모습을 한번 비춰보더니 으쓱해서는 보무도 당당하게 남편은 배밭으로 출근을 하고 나는 생강차 한잔을 들고 읽던 책을 손에 든다. 작은 딸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의 자전수필집이다.

시골 깡촌에서 태어나 선교단체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나이 서른하나에 결혼해서 살다 셋째 아이를 낳고 쓰러진 아내가 식물인간이 된 십여 년 동안 삶의 지각변동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오고 있는 이야기다. 아내를 지키는 간병인, 세 아이의 엄빠, 작은 교회 목사, 공 잘 차는 아저씨 등 이 모든 역할을 감당하며 고통 가운데서도 즐겁게 사는 법을 체득한 그가 쓴 쉽고 재미있는 공감백배의 글이다. 평범한 삶을 누리며 살아온 나는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원망하고 싸우고 고함치며 왜 나여야 하냐고 울고 저항하지만 그는 아내와 맺은 언약을 지키며 밝고 천진하게 자라는 세 아이들의 모습에서 위로를 받고 자신의 고통과 아픔과 슬픔을 통해 또 다른 이의 고통을 치유하며 위로와 안식을 나눠주고 있다.

그는 세상과 더불어 고통으로 소통하는 사람이 됐다. 결혼 전 그의 성품은 저돌적이며 외향적이며 독선적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집에 머무르고 집안일을 하게 하셨다. 머무는 삶을 싫어했고 달리지 않고 멈추는 순간 존재감을 상실하던 그가 집안의 붙박이로 정주해야 하는 그 상황은 큰 고통이었다. 사소한 일상사(설거지, 빨래, 청소, 아내 간병일 등)가 그의 삶을 채워갈 때, 그는 좌절을 부르짖었다. 제발 벗어나게 해달라고 해도 하나님은 꿈쩍도 안 하셨다. 주로 밖으로만 향했던 그의 삶의 시간을 안으로 안으로 일상의 삶으로 하나씩 바로 잡으셨다.

그는 모호한 삶의 여정 속에 두려워 울 때도 변함없이 아빠를 신뢰하는 아이들을 보며 하나님 앞에 자신을 다 내려놓고 삶을 맡길 수 있었다.
글이 따뜻한 것도 아니고 삶과 뒤섞이고 마주서고 떨어져보려 몸부림치며 부여안는 삶의 결을 정밀하고 다정하게 드러내는 그의 글은 무서울 만큼 솔직하다. 제각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인생을 살아가지만 목사님의 고통을 송두리째 내어놓고 세상과 더불어 공유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책을 보는 내내 울다가 웃다가 예수님 생각이 났다. 그렇다. 하나님은 사람을 바꾸시는 분이구나 한 사람의 변화로 그를 둘러 싼 교회가 성도가 모두 변하는 것이란 걸 알게 됐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삶으로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남편이 추위를 털며 헛기침을 하며 들어온다. “춥지?” “바람이 꽤 부네. 참으로 라면이나 끓이자.” 남편 말에 나는 얼른 냄비에 물을 끓인다. 참으로 얼마나 고마운 일상인가! 남편의 등장에 마음이 한결 든든하다. 나는 평소에 하지 않던 수다를 늘어놓으며 나와 더불어 일상을 함께 나누며 가는 남편에게 새삼 목소리 톤을 높이고 있다. 이제 책을 덮고 지루한 겨울을 마감하기를, 그에게도 우리에게도 따스한 봄이 어서 오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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