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31)

지난 해 연말, 일본의 유력 일간지 <니혼 게이자이 신문> 사회면에 게재된 손바닥 만한 작은 개인광고가 눈길을 끌면서 일본사회에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감사의 모임 개최 안내 - 저 안자키 사토루는 10월초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 보니 예상치 못하게 담낭암이 발견됐습니다. 게다가 담도·간장·폐 등에 전이돼 수술은 불가능 하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저는 남은 시간을 Quality of life(삶의 질)를 우선시 하고자, 다소의 연명효과는 있겠으나 부작용 가능성도 있는 방사선이나 항암제 치료는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1961년 고마쓰에 입사해 1985년 대표이사가 된 뒤 1995년 사장에 취임, 회장을 거쳐 2005년 현역에서 은퇴 했습니다. 40여 년간 여러분들께 공적으로 사적으로 대단히 신세를 져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은퇴 후 여생을 함께 즐겨주신 많은 분에게 대단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직 기력이 있을 동안 여러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고자 아래와 같이 감사의 모임을 열고자 하니 참석해 주시면 저의 최대의 기쁨이겠습니다. 회비나 조의금은 불필요하며 복장은 평상복 혹은 캐주얼복으로 해서 와 주십시오. -고마쓰 전 사장 안자키 사토루’

일본 굴지의 건설기계분야 유명 대기업인 고마쓰제작소의 안자키 사토루(81) 전 사장이 낸 광고문 전문이다. 이름해서 ‘생전장례식’ 관련 광고였던 것이다. 신문광고가 나가고 3주일 뒤에 도쿄 시내 한 호텔에서 ‘감사의 모임’이라는 이름의 ‘생전장례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회사 관계자, 동창생 등 지인 1000여 명이 모였다. 식장은 지인들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으로 꾸며지고, 현역시절의 활약상을 영상으로 띄워올려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안자키 사토루 전 사장은 휠체어를 타고 손님테이블을 돌며 일일이 한사람 한사람 악수하며 인사를 했다. 모임이 끝나고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죽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인생을 충분히 즐겨왔고, 수명에도 한계가 있다. 마지막까지 몸부림치는 것은 내 취향과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직접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

이처럼 살아서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을 일본에서는 ‘슈카쓰(終活)’라고 하며, 이미 일본에서의 슈카쓰산업 시장규모가 연간 1조엔(약 1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술년 새해를 설계하는 마당에 새삼 안자키 사토루 전 사장이 찍은 ‘능동적인 인생의 마침표’가 경외감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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