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농촌위한 재능나눔(1) - 마을영화사 이은경 대표

▲ 이은경 대표(사진 오른쪽)는 지난 19년 간 농촌마을영화 100여 편을 만들며 농촌 활력을 높이고 있다.

전국 농어촌마을 돌며 마을영화 100여 편 제작
 주민들과 소통으로 자연스런 일상 카메라에 담아

“농촌주민들은 오랫동안 농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연기를 잘하지 못해도 행동에 농촌의 삶 자체가 묻어 있습니다. 오래 전 전원일기에서 연기를 펼친 배우 최불암 씨도 농촌주민들보다 농촌을 많이 알지 못할 거예요. 어떤 베테랑 배우도 농촌에서 살아온 80대 주민 역할을 흉내 내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전문배우가 등장하지 않는 마을영화에 대해 묻자 돌아온 이은경 대표의 대답이다. 마을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네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주민들이다. 영화관에서 많이 상영되지 않는 독립영화에도 전문배우가 나오는데 마을영화는 그렇지 않다. 마을영화를 제작하는 이은경 대표는 농촌주민들이 모두 주인공인 영화 100여 편을 1999년부터 만들어왔다. 지난해 11월 한국농어촌공사가 주관한 농촌재능나눔대상에서 영예의 대상을 받았다.

▲ 마을영화사 이은경 대표와 남편 신지승 영화감독은 농촌마을 영화 제작에 뜻을 함께하고 있다. 부부는 편집 작업과 생활을 겸하는 트럭 안에서 영화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영화에서 농촌여성 존재감 남달라
“1999년 경기도 양평에 귀촌하면서 농촌주민들의 삶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같이 생활하다보니까 살면서 영화관에 한 번 못 가본 주민들도 많았어요. 영화의 관객조차 돼 본적 없는 그들의 삶이 와닿았죠. 농촌의 마을들은 저마다 개성 있는 전통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재난영화에서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등장인물의 운명적 사건이 되는 것처럼 농촌에 살고 있는 마을 주민들도 저마다의 웃음과 자연에서 살아가는 즐거움들이 있죠. 이러한 발견에 마을영화를 제작하게 됐습니다.”
이 대표는 본격적인 영화제작에 앞서 농촌사회에서 여성들의 삶부터 이해하려 노력했다.
“과거부터 여성들은 농촌사회 피라미드 구조에서 아래쪽에 위치했습니다. 궂은 일은 남성보다 많이 하는데 알아주지 않았죠. 대다수의 농촌여성들은 살아가면서 억눌러왔던 것이 많아 연기로 이끌어낼 수 있는 이야깃거리들이 풍부합니다. 제작자 입장에서 농촌여성들은 영화에 중요한 요소이고 이장이나 남성들은 영화에서 평범한 축에 속했습니다.”

▲ 농업 현장에서 이은경 대표가 주민들과 영화를 촬영하고 있다.
▲ 이은경 대표는 촬영뿐 아니라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면서 지역의 문화생활에도 기여하고 있다.

대본 없는 생활밀착형 연기
이은경 대표는 마을주민들과 친해지기 위해 정해진 주거 공간 없이 농촌 곳곳을 누빌 수 있는 트럭에서 살고 있다. 영화제작을 함께하는 남편, 쌍둥이 자녀들과 전국을 누빈다.
“처음 영화 찍으러 마을을 찾아가면 어르신들 반응이 차가워요. 요즘은 방송에서 농촌을 취재 나와서 방송 경험이 있는 주민들도 여럿이죠. 며칠 동안 고생해서 방송에 협조했는데 막상 텔레비전에는 짧게 편집돼서 5초도 안 나오는 경험을 해봤다며 저희에게 또 돈 벌러 온 거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희는 농촌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담아요. 마을에 함께 살면서 그들과 친해지는 게 우선이죠. 주민들이 농사일을 하고 있으면 찾아가서 아무 일이 없는데도 카메라로 찍어두고 어르신들이 많이 모이는 마을회관에서 찍었던 장면을 상영합니다. 본인 모습이 나오니까 재밌어합니다. 같은 작업을 반복하면서 카메라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드리는 거죠.”

나중에는 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찍고 있어도 신경 쓰지 않고 농사일을 하다가 주민들이 재밌는 상황을 연출해주기도 한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어쨌든 찍었던 장면들을 모두 함께 보게 되니까 가끔씩은 어르신들이 재밌는 상황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4월에 쟁기질을 하다가도 이웃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생소한 농작물을 설명해주기도 하면서 말이죠.”
마을영화는 ‘워낭소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처럼 농촌을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다. 다큐멘터리와 연극이 적절히 버무려져 있다.

“카메라와 친해지면 저희가 생활하면서 느낀 마을에 있음직한 스토리를 어르신들에게 소개하면서 연기를 끌어내고 있습니다. 카메라가 일상을 따라가기만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연기가 필요하지 않아서 연기의 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주민들 저마다의 성격은 그대로 살리면서 조금은 낯선 상황을 만들어 봅니다. 어르신들은 연기에 도전하면서 자주 NG를 내는데, OK를 내야한다는 조바심이 들면서 연기의 재미를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영화는 구체적인 대본 없이 상황만 주어진다. 현장에서 주민들과 이야기를 맞춰보면서 극의 흐름을 이어간다.
“여러 에피소드를 찍고 재밌는 부분을 편집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소외된 사람 없이 모두가 주인공
이은경 대표는 영화를 촬영하면서 주인공을 만들지 않는다.
“마을에서 주인공 몇 명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게 되면 그들이 마을을 대표하는 사람이 되고 다른 주민들은 소외됩니다. 영화를 보고 관광객이 마을을 찾았을 때, 주인공이 아니었던 이웃들은 소외감을 느끼죠. 마을영화는 농촌주민 모두의 파티고 축제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웃음을 전하는 것이 저희 영화의 목표입니다.”

이 대표는 특정한 인물 몇몇을 주인공으로 하면 영화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도 제한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성향의 마을주민 모두가 영화에 참여할 때 이야깃거리도 풍부해진단다.
“영화를 촬영하다보면 마을노래가 따로 있는 동네도 있어요. 저희만 모르고 마을주민 모두가 아는 노래를 그들이 부르고 있으면 신기하면서도 재밌어요. 주민들의 생활을 영화에 담고 시대상을 영상으로 기록하면서 후대에는 마을영화가 전설이나 설화처럼 농촌을 알 수 있는 자료로 남겠죠.”
이 대표 내외는 그동안 제작한 마을영화 100여 편을 각종 공모전에 출품하면서 상금을 받거나 마을영화 제작에 대한 강연을 펼치면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제가 강연에서 강조하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이름과 얼굴을 후대에 남기고픈 욕망이 있다는 거예요. 저희는 영화를 통해서 최대한 많은 주민들을 카메라에 담고 영화가 끝나고 출연자들의 이름이 올라갈 때 수많은 농촌주민들의 이름이 올랐으면 합니다. 그들이 영화에 참여했을 때 후대에 기억될 수 있도록 제작에 정성을 들이고 있습니다. 또한 완성된 영화를 다함께 관람하고 친근한 얼굴의 이웃이 연기를 펼치는 모습을 보면서 이웃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경험이 되길 바랍니다.”
이은경 대표 내외는 현재 강원도 인제 DMZ 주변 마을에서 영화작업에 한창이다. 그들의 다음 농촌 행선지는 어디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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