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27)

 모피사랑 이면에는 
 인간의 잔혹한 
 동물 살육 현장이 
 숨겨져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백화점마다 모피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해가 바뀔수록 수요와 판매량도 늘고 있다. 국제모피연합(International Fur Federation)에 따르면 1990년에 4500만 마리이던 세계 밍크 판매량은 2015년 8400만 마리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모피는 태고시대부터 인간과 역사를 같이 해왔다. 사람의 보온 수단으로 쓰이던 모피가 고대에는 권위의 상징으로, 중세에는 왕족이나 성직자들의 대례복에 이용됐다. 수요가 폭발하면서 모피의 종류에 따라 신분을 가르기까지 했다. 이후로도 모피는 고급스러움과 부의 상징으로 인간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 끔찍한 모피사랑의 이면에는 허공에 매달려 다리가 잘리고,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등 인간의 잔혹한 동물 살육 현장들이 숨겨져 있다.

모피가 생활필수품의 단계를 넘어 수요 폭발로 돈을 버는 수단이 되면서 동물 수난은 점차 심각해진다. 중세 말부터 그랬다. 처음으로 수난의 표적이 된 것은 작고 앙증맞은 비버였다. 1580년대 파리를 중심으로 비버 털로 만든 모자가 유행을 타자 비버의 비극은 절정에 이른다.
유럽전역에 비버 털모자 바람이 일어, 비버는 눈에 띄는 대로 털이 벗겨져 돈이 됐다. 비버의 씨가 말랐다. 1732년 영국은 식민지의 모자 생산자들이 비버 털모자를 식민지 밖으로 팔지 못하도록 하는 조례(Hat Act)까지 발표할 정도였다.

유럽 사람들은 비버를 찾아 시베리아를 뒤지고 북아메리카까지 쫓아갔다. 북아메리카의 주인이던 인디언들은 유럽인들이 원하는 비버 가죽을 손도끼, 총, 화약 등과 교환하는 재미를 즐겼다.
그렇게 비버가 지구상에서 멸종위기를 맞던 1797년, 런던에서 모자점을 하던 존 헤더링턴(John Hetherington)이 실크 햇이라는 새로운 모자를 만들어냈다. 비싼 비버가 아닌 실크를 사용해도 됐다. 이 모자가 유럽에 퍼지면서 비버는 거의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비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밍크, 여우, 친칠라, 앙고라토끼, 라쿤너구리 등 아름다운 털을 가진 모든 동물들이 ‘도륙의 대열‘을 이루고 있다.

“동물의 털을 입지 말자”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세계적 명품 브랜드인 아르마니, 랄프 로렌, 스텔라 맥카트니에 이어 최근 구찌까지 밍크, 여우, 라쿤 등의 모피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퍼 프리(Fur Free)’를 선언했다.
전 세계 800여 업체가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대신 인조 모피, 인조 가죽을 대안으로, 비건 패션(vegan fashion:동물의 가죽이나 털을 사용하지 않는 패션)을 내놓고 있다. 국내에서도 일부 패션·유통업체를 중심으로 인조 모피 제품 판매를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

국제모피연합 자료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모피를 수입하는 곳은 홍콩이고 중국이 2위이며, 한국은 세계 9위의 수입국이다. 특히 한국은 그동안 50~60대가 모피 소비층이었으나 이제는 30-40대를 거쳐 20대까지 소비층이 넓어지고 있다. 
과연 비건 패션의 움직임이 이 나라에서 얼마나 성공할지 두고 볼 일이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