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한 전철역에서 88세의 노인을 만났다. 이 노인은 한국 참전용사라는 글이 쓰인 모자를 쓰고 있어서 참전 노고에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어디 갔다 오시냐?”라는 인사로 대화가 시작됐다. 6·25전쟁 때 다리를 다친 부위가 재발해 보훈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어 “누구와 사시느냐?” 물으니 경기도 화성시 향남에서 노부부 둘이 살다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 지금은 혼자 산다고 했다. 그는 젊은 시절에 군청에서 공무원으로 생활하며 자녀 4남매를 윤택하진 않았지만 잘 키웠다고 했다.

노인은 부인이 생존 시에 많은 재산은 아니었지만 장남을 중심으로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눠줬다고 한다.
장남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거동이 불편해 큰 며느리가 가끔 찾는 정도고 작은 딸은 저 살기도 급급한 형편이라 했다. 그나마 큰 딸이 잘 살았는데 4년 전 딸 내외가 찾아와 하던 사업이 부도로 어려우니 노인 소유의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게 해 달라고 하도 사정을 해서 도장을 찍어준 뒤로는 찾질 않는다고 했다.

노인의 보훈병원 치료비는 22만 원이 나왔다. 그는 현재 통장 잔고가 24만 원밖에 없어 치료비를 주고 나면 2만 원만 남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치료비를 내려고 잔고를 조회하니 날품 파는 막내아들이 10만 원을 넣었다며 마냥 기뻐했다. 이 얘기를 귀담아 듣던 50대 승객이 큰사위에게 빌려간 돈을 돌려 달라고 말하라고 했다. 이 말에 노인은 이 사실이 소문나면 남매 간 불화로 싸움난다며 말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노인의 따뜻한 부정(父情)이 안쓰러운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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