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곳에 가면...마셔도 깊게 취하지 않는 술이 있다

▲ 약으로도 쓰인 귀한 술, 죽력고의 명맥 이어나가는 송명섭 명인과 아내 박봉순 씨.

전북 정읍 ‘태인양조장’ 박봉순·송명섭 명인 부부

 죽력고는 관서감홍로, 이강주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명주로 꼽힌다 

▲ 2014년 농식품부의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에 선정되기 전에도 이곳에서는 죽력고 제조 방법은 누구에게나 공개했다.

“술맛은 과정이 좌우합니다. 또 술 빚는 법을 혼자만 갖고 있으면 기술이지만 함께 나누면 문화가 됩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고, 식품명인이기도 한 죽력고를 빚는 정읍의 송명섭 명인의 술에 대한 철학이다. 그래서 송 명인은 술은 문화이자 음식이며, 문화를 같이 향유할 때 그 보람과 가치는 더욱 커진다고 말하며 죽력고의 비법을 모든 이에게 공개하고 있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죽력고를 관서감홍로, 이강주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명주로 꼽았다. ‘전라도의 죽력고는 푸른 대나무를 숯불 위에 올려놓아 뽑아낸 액을 섞어서 만들어낸 소주’라 기록돼 있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모진 고문을 당하고 관아로 압송될 때 지역민들이 죽력고를 먹게 했고, 기운을 차린 전봉준이 꼿꼿한 자세로 압송됐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송 명인은 “대나무가 많이 나는 전라도 지역에서 예전에는 집집마다 누구나 빚던 술”이라고 죽력고를 소개했다. 하지만 만들기가 까다롭고 시간도 많이 걸려 술의 명맥이 끊어질 위기였지만 송 명인이 고집스럽게 이어가는 술이라 말했다.
송 명인이 빚는 죽력고는 자연과 기다림이 빚어낸 술이다. 제조공정이 길고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죽력고 만드는 과정을 송 명인은 이렇게 설명했다.

▲ 32도 일반증류주에 속하며 깊게 취하지 않는 술로 알려진 죽력고.

대나무 토막을 항아리에 넣고 불을 지펴 흘러내리는 액체 즉 대 기름이 죽력으로 우선 죽력을 만든다. 솔잎, 댓잎, 석창포, 생강 등 약재를 죽력 속에 잠기게 해 재워놓았다가 소주고리 안에 넣는다. 30일간 숙성한 술을 붓고 약한 불로 6~8시간 불을 때면 방울방울 맺히는 증류수가 죽력고다.
송 명인은 죽력고 내리는 법을 친정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비법을 이어받은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그의 외증조부는 한약방을 운영할 때 치료 보조제로 술의 비방을 모아 사용했는데 그중 하나가 죽력고였다. 일제 강점기때 술 빚는 것을 단속할 때도 치료에 쓰인다는 명분으로 단속을 피할 수 있었다. “죽력고는 다른 치료약이 없던 시절에 아기 경기 치료에 주로 이용됐죠.”
약으로도 쓰일만큼 귀한 술의 전통을 이어가는데 송 명인은 큰 자부심을 느낀다.

누룩 빚기의 달인 아내 박봉순 씨
송명섭 명인의 옆에는 어언 40년 송 명인을 도와 누룩과 술을 함께 빚어 온 조력자인 아내 박봉순 씨가 있다.
“누룩 빚는 것은 아마 저보다 더 잘할 겁니다.”
아내 박봉순 씨를 송 명인은 ‘누룩 만들기 달인’으로 은근히 치켜세웠다.
“뭐든 철저히 해야 하는 고집스런 분이어서 그 옆에서 도와드리기 힘들었죠.”
박봉순 씨는 죽력고의 원형을 훼손시키지 않으려는 송 명인의 서릿발 같은 자존심을 옆에서 지킬 수 있게 도운 장본인이다. 

“돈을 벌자고 마음 먹었으면 벌써 큰 공장 몇 개를 지었을 겁니다. 개량화해 대량 생산 하자는 제안이 이곳저곳서 있었지만 죽력고 전통을 손상시킬 수 없어 예전 방법 그대로 소량 생산만 하고 있죠.”
깊게 취하지 않는 신비한 술로 소문이 나서 주문이 보름씩 밀려있어도 ‘우리 먹고 살 것만 있으면 됐다’는 남편의 말을 존중해 온 박봉순 씨다.
부부는 우리의 술은 우리 민족의 맛과 풍류가 깃든 문화유산이라며, 그 문화유산을 계승하는 자랑스러움을 돈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게 역력했다.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그 일을 하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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