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이산 우보만리’(愚公移山, 牛步萬里)라는 중국의 고사성어가 있다. ‘어리석어 보여도 조금씩 흙을 옮기면 산을 옮길 수 있고, 소걸음처럼 느려도 만리를 간다’는 뜻이다.
조선 선조 때 문신이었던 정탁이 수업을 마치고 스승인 조식에게 하직인사를 할 때의 일화가 있다. 조식은 정탁에게 울안에 황소 한 마리를 매어 두었으니 타고 가라고 했다. 그러나 소는 보이질 않았다. 조식은 정탁을 향해 “자네는 말과 행동, 그리고 의기가 민첩하여 달리는 말과 같아 넘어지기 쉬우니 매사에 신중하고 차분해야 멀리 갈 수 있네. 그래서 마음의 소를 타고 가라는 말일세”라고 했다.

정탁은 고위관리가 된 후 우보(牛步)의 정치학으로 성공을 거뒀다.
한국은 산업화, 민주화과정을 거치면서 고속성장을 통해 반세기만에 선진국의 문턱까지 달려왔다. 철강, 석유 등 자원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IT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가난과 결핍이 성장과 창조의 능력을 만들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무섭게 달려온 한국’이 이젠 황소걸음으로 느릿느릿 주변도 살피며 신중함을 잃지 말고 정확한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한다.

최근의 한국정치는 속도문화에 젖어 과속운전을 하는 것 같아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원전, 외교, 북핵 등 신중함이 없이 실적만 쫓다보면 부작용이 생겨나고 이것이 쌓이면 결국 국가위기를 몰고 온다. 어떤 것이 국익을 위한 정확한 방향인지 살피고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우공(愚公)의 정신을 배워야 할 것 같다. 국민 모두가 함께 마음의 소를 타고 멀리 가는 느림의 미학이 살아있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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