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속내를 드러낸 겨울산은
 고라니 한 마리도
 그 몸을 숨길 데가 없다

누워 있으면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한기가 한쪽 어깨만 쿡쿡 찌른다. 반쯤 돌아누워 몸을 세우면 찬바람이 지나가는 등허리와 목덜미 쪽이 선득하다. 웃풍이 센 우리 집은 낮에 활동할 땐 잘 모르는데 밤이 깊어갈수록 방바닥은 따뜻한데도 자다가 이불이 벗어져 조금 내려가기만 해도 어깨쭉지를 찌르는 듯 한 통증에 잠을 깨곤 한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잘 때 위아래 두툼한 옷을 입고 수면양말까지 신어야 안심이 된다. 물론 나이 들면 뼛속에서 찬바람이 나온다지만 이 집이 지어진 지가 20년을 훨씬 넘기다보니 천정은 높고 문들은 쓸데없이 크고 요즘 짓는 집에 비하면 방한력이 거의 없다. 그건 서울에 사는, 지은 지가 오래되지 않은 딸 아파트에 가보면 바로 알 수가 있다. 겨울만 되면 찾아오는 이 불편을 어떻게 해소할까 궁리하다가 올 해는 늘 생각해오던 방한 텐트를 사서 방에 설치했다. 얇은 한 겹이라도 사방의 지퍼로 텐트를 닫으면 그 속이 제법 아늑하고 한기가 덜 한 것 같다. 집 속의 집. 진정한 나그네의 삶을 실현한 순례자의 이동가옥처럼 우리는 집 한 채를 새로 구입한 것이다.

벌써 40년 전 일까. 지금 남편과 연애하던 대학생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위해 헌법을 모두 바꾸었던 유신정권시대에 학생들의 데모를 막기 위해 학기 중에 느닷없이 학교문을 닫은 적이 있었다. 그걸 우린 10월 유신 방학이라 불렀는데, 정상적인 방학이 아니어서 집으로 내려갈 수도 없고 학생들은 갈 곳이 없었다. 그때 남편과 친구 그리고 나와 내 친구 4명이 함께 치악산으로 등산 여행을 갔었다.

산에 도착해 계곡물이 흐르는 평지를 찾아 우리는 가져온 버너와 코펠로 밥을 짓고 찌개를 끓여 꿀맛 나는 밥을 맛있게 먹었다. 설거지를 하고 짐을 꾸려 다시 출발하려니 벌써 산 그림자가 드리었다. 그래도 밥도 먹었으니 조금 더 가서 텐트를 치기로 했다. 산길은 오르면 오를수록 길은 점점 비좁아졌고 산이 깊어선지 얼마가지도 못해 어둠이 사방을 에워쌌다. 산속이어선지 10월인데도 춥고 떨렸다. 우리는 허둥지둥 텐트 네 귀퉁이 폴대를 세울 공간이면 무조건 텐트를 쳤다.

그렇게 나란히 텐트 두 개를 겨우 치고 등짝에 울퉁불퉁한 돌에 배기는 불편함에도 잠에 곯아떨어졌다. 얼마나 잤을까?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깨고 보니 해가 중천에 떴는지 눈이 부시도록 환했다. 텐트 밖에서 소방울 소리가 절렁거리고 사람들 목소리가 컸다. 얼른 텐트 지퍼를 열고 보니 코앞에 눈이 왕방울만한 소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왕좌왕 텐트 밖을 나오니 우리가 어제 밤에 급하게 텐트를 친 자리는 사람들이 오가는 길 한 가운데였다. 소를 몰고 밭에 가는 사람, 마을 가는 사람은 아마 우리가 나와 주기를 기다린 것 같았다. 우리는 죄송하고 미안해서 급히 텐트를 걷고 사과를 드렸는데, 괜찮다고 웃으시며 우리 등을 두드려주시며 지나갔다.  그렇게 무사히 산행을 마치고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이미 겨울이 한창이라 거실 창으로 내다보면 앞산 꼭대기에 서 있는 나무는 뻣뻣하게 세운 고슴도치 털처럼 나란히 알몸으로 서서 산등성이 선을 그리고, 그 발치로는 방금 흩뿌린 눈이 남아 그 옛날 머리에 이를 잡기위해 DDT를 뿌린 머리 밑 마냥 허옇다. 그 속내를 송두리째 드러낸 겨울 산은 지나가는 고라니 한 마리도 그 몸을 숨길 데가 없다. 산 아래를 흐르는 강은 이미 꽁꽁 얼어붙고, 날리던 눈발은 바람결에 파도물결처럼 연속적으로 흰 무늬를 만들고, 한가해진 동네 청년들은 물고기를 잡느라 언강을 오르내린다. 예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 겨울을 바라보며 오늘도 변화무쌍한 하루의 일을 접고 이제 텐트 속으로 들어가 긴 밤 따뜻한 잠을 청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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