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한미연맹 쉐리송 대표

미국 출장 인터뷰 여섯 번째 인사로 전미(全美)지역 한미연맹(Korean-American Alliance)대표인 쉐리 송을 만났다.
미국에 이민한 한국 동포는 현재 250여만 명에 달한다. 그리고 이번 미국 취재 지역인 워싱턴주로 이민을 온 서북미지역 한국 동포는 18만 명에 이른다.
낯선 미국에 와 사는 한국 동포들, 그들은 미국으로 건너온 만큼 미국 국민으로 정당한 대우와 권익을 받고 살아야 한다.
미국은 민주국가의 맹주(盟主)로 국민대상으로 참정주권의 올바른 투표를 독려코자 선거전 투표자등록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동포들은 미국생활의 생소함과 분주함으로 인해 투표권을 포기해 투표율이 극히 부진하다.
한국 동포 사회의 정치세 규합과 권익 신장, 위상을 높이기 위해 투표자등록계도운동과 한국동포봉사에 헌신하고 있는 쉐리 송의 활약상을 알아봤다.

선거철, 주지사·연방상원의원 등
후보자 전원 한국 동포 앞에서 
정견발표

고교 졸업 즈음 민주당 입당해
시의원·상원의원 후보로 나가 40% 이상 득표하며 선전

5살에 미국 이민 와 한국말 서툴러
쉐리 송과의 투표자등록 계도와 한국 동포 사회 봉사활동에 대한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기에 앞서 최근 쉐리 송에 대한 반가운 뉴스가 들어와 그 이야기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뉴스에 의하면 워싱턴주 제이 아인슬리 주지사가 이번에 쉐리 송을 6년 임기의 워싱턴주 부동산 커미셔너로 임명했다는 것이다. 

주정부의 커미셔너는 주지사의 주요정책에 대한 자문과 보좌 역할을 하는 막중한 직책이다. 이러한 자리에 우리 동포가 발탁됐다는 사실은 본인의 영광일 뿐만이 아니라 동포 사회의 영광이기도 하다.
한국 동포들을 위해 열심히 발로 뛰고 있는 쉐리 송이지만 그는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와 우리말이 능숙하지 못했다. 

“저는 다섯 살에 미국에 와 유치원에 들어갔는데 한국어를 쓸 기회가 없는데다가 영어를 못해 많이 애를 먹었어요. 1986년 일리노이 주립대학을 졸업하기 전인 1985년부터 86년까지 연세대학교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가 문학과 역사를 공부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확립과 긍지를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서투르지만 한국어를 하게 되었답니다.”

미국 국적 취득했지만 한국인으로서 동포 위해 앞장
쉐리 송은 아버지로부터 이민 초기부터 미국 국적을 취득해 미국 국민이 됐다. 하지만 피와 얼굴은 한국인이니 한국인으로서의 품격과 긍지를 지녀야 된다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특히 한국 동포를 위한 일에 앞장서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이런 아버지의 간절한 당부로 쉐리 송은 일찍부터 동포사회 봉사에 눈을 떠 열심히 앞장 서 왔다.

그는 젊은 한국 동포세대 중심 미국 생활정보 입수와 미국인과 동포대상 봉사교량 역할을 하는 한미전문직업인모임(Korean-American Professional  Society)조직을 구성, 활동했다. 1995년 쉐리 송은 이 모임 첫 회장으로 당선 동포대상 자원봉사와 기금 모금, 불우동포지원에 힘썼다.
쉐리 송은 이런 사회활동을 하면서 지난 18년 동안 부동산 중개사업을 꾸준히 해왔고 그간 탁월한 부동산 중개업무 솜씨를 인정받아 이번에 주정부 부동산 커미셔너가 된 것이다. 

전미(全美) 한미연맹 회장으로 한국인의 정치참여율 높여
한편, 쉐리 송의 업적 중 특별히 높게 평가되는 것은 바로 오늘날의 막강한 정치활동이다. 특히, 쉐리 송은 동포사회의 튼튼한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는 한미연맹(Korean-American Coalition)에 관여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KAC의 뿌리는 Korean-American Voters Alliance 즉, 한국동포 투표자 연맹이다. KAVA는 1992년 4월29일에 흑백갈등으로 발생한 LA폭동에 충격을 받은 우리 한국 동포 젊은이들이 발족시킨 정치단체이다.

LA폭동은 백인들의 인종차별에 분노한 흑인들이 그 분노를 평소에 만만하게 보던 한국 동포 사회에 분풀이를 한 것이다. 이때 폭도들은 애꿎은 한인 상가를 습격, 많은 상품을 약탈해 가고 불을 지르는 등 한국 동포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 이에 자극을 크게 받은 우리 젊은 엘리트들이 이제까지 무기력한 동포사회에 정치적인 힘을 모으고 키우기 위해 KAVA 즉, 투표자 등록 계도 단체를 결성한 것이다.

특히 쉐리 송은 이 KAVA활동에 깊이 관여해 동포사회의 힘을 더욱 공고히 결집시키는 일에 앞장섰다. 

또 2005년에는 전문직 모임(Korean-American Professional Society)과 통합을 했고 이러한 통합을 거듭 하면서 성장한 KAC(Korean-American Coalition) 한미연맹의 워싱턴주 지부의 정치력은 놀라울 정도로 막강해졌다.

현재 워싱턴주 KAC지부는 선거철이 되면 주지사 후보를 위시한 연방회의 의원 후보 등 모든 후보자를 우리 동포 앞에 불러 놓고 정견 발표를 시킬 정도의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쉐리 송은 KAC 워싱턴 지부가 이렇게 활발히 움직이자 그 운영을 후배에게 넘겨주고 지금은 미국 전역에 조직망을 갖추고 있는 KAC 전미(全美)한미연맹의 회장이라는 일을 맡아 활동 중에 있다.

워싱턴주 상원의원 후보로 나가 44% 득표력 발휘
한편, 쉐리 송은 아버지의 한국 동포 돕기 당부를 받들어 힘찬 봉사의 힘을 키우고자 고교 졸업 즈음 어린 나이에 민주당 당원으로 입당해 정치력을 키워왔다. 그리고 쉐리 송은 앞서 언급된 여러 조직을 구성해 실시한 활동과 동포사회에 헌신해 온 일을 기반으로 2013년 킹 카운티시 시의원 후보로 나서서 42%를 득표했으나 차점으로 낙선했다. 다음해인 2014년에는 워싱턴주 상원의원 후보로 나가 44% 득표력을 발휘했지만 아쉽게도 차석으로 낙선했다. 하지만 쉐리 송이 40%가 넘는 득표력을 얻은 점으로 미루어 보아 한국 동포들이 지금보다 더 똘똘 뭉쳐 보다 강력한 협조로 쉐리 송을 지지한다면 차기선거에 유력한 다크호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쉐리 송의 정치 입문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속담에‘한 사람이 100사람의 역할을 한다’는 뜻으로 일당백이라는 격언이 있다. 이 격언대로 미루어 보아 쉐리 송이 바로 우리 동포사회를 위해 100사람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북미 동포사회가 오늘날 높은 위상을 나타내고 있는 원천은 쉐리 송처럼 일당백의 역할 하는 인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쉐리송이 미국 주류사회를 이끄는 핵심 주역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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