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미장원 향숙씨■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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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8  10: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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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옛날 친정집에 
다녀온 듯한 따스함이 
어둠과 추위를 몰아낸다

1년에 두 번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협심증 정기검진을 받는 날이다. 가는 참에 오전에는 지인의 소개로 청량리에 있는 신경통증병원에서 허리에 침을 맞고, 오후에는 예약된 시간에 강남세브란스로 가서 또 6개월치 약을 받아 돌아올 예정이다. 

신경통증 치료를 받고 강남세브란스로 향했다. 검사결과, 여기 저기 나빠졌다고 한 달 뒤에 다시 오란다. 허리와 무릎이 아파 운동량이 적어지다보니 체중이 늘어 몸에 무리가 왔나보다. 

서울 하늘은 내 마음처럼 낮고 검은 구름으로 내리 누른다. 병원을 나서니 오후 5시.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그때 반짝 머리에 불이 켜졌다. 계획엔 없었지만 예전에 살면서 늘 다니던 일원동의 미장원에 들러야겠다는 생각에 차를 돌렸다. 병원에서 미장원까지 10분 거리이고 거기서 괴산으로 내려가기도 좋다. 

마침 미장원엔 사람이 없고 한산해서 원장님과 둘만의 반가운 만남이 됐다. 커트를 하고 파마를 시작하자 퇴근한 사람들이 몰려왔다. 대부분 내가 다 아는 손님들이다. 여기 살다 중국으로 갔다가 잠깐 들른 사람, 미국에서 온 사람, 멀리 이사를 갔지만 머리는 꼭 여기서 하는 사람들... 나 역시 괴산으로 이사간 지 12년이 됐지만 서울만 오면 여기서 머리를 한다. 미장원 원장인 향숙씨가 있기 때문이다. 

강남 변두리 개포동 끝에 붙은 일원동에서 거의 30년 이상 미장원을 하다 보니 손님들은 저소득층에서 고소득층의 사장님까지 파란만장한 인생이 다 모이는 곳이다. 옛날 우물가 아낙네들의 수다방처럼 여기는 아줌마들의 욕구 배설구다. 

사람이 많아 순서를 기다리다 보면 한나절은 보통이다. 자기 가족에도 다 하지 못한 마음에 쌓인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어내기도 하고‘알쓸신잡’을 능가하는 인생문제 토론장이기도 했다. 그 가운데 향숙씨는 누구의 말도 다 들어주는 사람이다. 

그녀는 젊은 날 원치 않은 불행한 현실, 결핍의 현실에서 인생의 쓴맛을 너무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어서 자기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삶의 목적이 분명하다. 젊은 날 돈이나 출세나 명예처럼 우릴 끝없이 목마르게 했던 것, 그것으로 비교하고 경쟁하며 우월감을 내세워 남을 지배하려 했던 욕심을 다 버리고, 없어도 되는 것에 대해 더 이상 갈망하지 않고 인간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만을 묵묵히 찾아서 한다. 진짜 자신을 실현하는데 열심이다. 

그녀를 만나면 누구나 솔직해진다. 자신을 가려서 체면을 차릴 필요도 없다. 향숙씨는 미장원을 통해서 나만 사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사는 것이 능사인 것을 너무 잘 아는 사람이다. 
모처럼 만난 사람들과 더불어 맘이 유쾌해지고 수다스러워진다. 그 와중에도 향숙씨는 미장원에 붙은 조그만 주방에서 돼지고기 수육을 삶고 김장김치에 시래깃국을 차려내어 빨리 먹으라고 재촉한다. 나는 입에 발린 사양을 했지만 이내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머리에 중화제를 바르고 파마가 끝나가는 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에 기르는 개의 목줄이 풀려 개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전화를 받는데 미장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걱정이 확 퍼졌다. 서둘러 괴산으로 향했다. 도착하고 보니 개는 집 가까이 있어서 바로 목줄을 묶어 맸다.‘복동이(개) 가출사건’이 완료됐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향숙씨에게서 전화가 왔다.“아직도 문 안 닫았어요?”“지금 들어가려 해요. 개가 어찌 됐는지, 잘 가셨는지 궁금해서요.”“잘 붙들어 맸어요. 오늘 돈 한 푼 없이 미장원 가서 맛있는 저녁밥에 외상으로 파마까지 하고 참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

기약 없는 약속을 나누고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아주 먼 옛날 친정집에 다녀온 듯한 따스함이 내 속에 어둠과 추위를 다 몰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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