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정희 대통령은 1969년 8월 여름 들이닥친 수해를 입은 경남지역을 시찰했다. 박 대통령은 기차를 타고 가다 차창 너머로 마을 남녀노소가 나와 제방과 마을 안길을 보수하는 모습을 보고 열차를 정지시켰다. 이 마을에 간 대통령은 마을 총회에서 주민들이 자주적으로 합심해 수해복구를 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1970년대 초반, 우리나라는 국민소득이 1천불에 불과했다. 농촌은 초가지붕에다 화장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열악한 환경이었다. 마을 길이 제대로 뚫리지 않아 경운기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이에 박 대통령은 근면·자조·협동을 모토로 한 범국민적인 새마을운동을 주도했다. 새마을운동 전도사가 된 박 대통령은 새마을 노래를 작사·작곡해 전국 방방곡곡의 마을 앰프를 통해 새마을운동 추진을 독려했다.

이 같은 붐 조성으로 새마을운동은 불길처럼 번져갔다. 때마침 추진된 중공업 발전시책과 맞물려 조국 근대화의 초석을 다지는 운동이 됐다. 그러나 박 대통령 서거 후 새마을운동은 침체됐다. 하지만 새마을사업은 우리나라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바뀌면서 수혜국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새 정부 들어 새마을사업 해외원조가 중단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APEC 정상회의 참석했다가 새마을사업 수혜국 대통령으로부터 새마을사업의 지속적인 지원 요청을 받았고, 이를 적극 수렴해 지난해 원조액보다 더 늘려 사업을 재개했다. 근면·자조·협동이 세계인 모두가 공감하는 실천덕목임을 인정받아 인기있는 원조사업이 된 것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긍지를 느낀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