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설 이전 개정 약속 흔들
부처 간 엇박자가 농민 불신 키워

“나는 사회적 약자인데 강자들이 보호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나는 상대방이 써온 계약서에 도장만 찍었다.”이와 같은 항변이 법 앞에서 통한 적은 없다.“나는 약자이고 법을 몰랐다.”무지의 항변,“계약서를 안 읽어 보고 도장을...”자기과실의 항변은 법 앞에서 무력하고 전혀 보호를 받을 수 없다.

당초, 김영란법이 탄생할 때도 그랬다. 농축수산물에 타격이 있겠지만, 이 정도로 피해를 남길 것으로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단 1년의 시행을 통해 화훼농가는 초토화 됐고, 과수산업은 반토막이 났다. 축산농가의 피해도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27일, 국민권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영란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절반을 넘지 못해 부결됐다. 농업인들이 간절히 바라던 설 연휴 이전 개정에 대한 기대가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약자들의 염원이 어떠하든‘법의 안정성’이란 명분으로 1년도 안된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권익위의 내부적 반발은 이미 추석 이전부터 계속 감지돼 왔었다.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 일이 대통령 공약 사항이었고,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이 수차례 사과를 통해“반드시 설날 이전에 개정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왔다는 점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해 왔다. 그런데, 정부 인사들의 신뢰성에 흠집을 내는 엇박자와 미숙한 행정은 어떻게 벌어진 것일까?

첫째, 김영란법을 입안한 국민권익위에 개정안을 내놓으라는 생각부터 잘못됐다.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 국정원 개혁안을 국정원 스스로 만들어 오라는 셀프개혁 지시를 내려 여론의 비웃음을 샀던 일과 한 치의 차이도 없다.

둘째, 농식품부 주도의 대국민 설득과 홍보가 미흡했다는 점이다. 권익위는 그동안 용역결과를 바탕으로 11월29일‘대국민보고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수차례 밝혀 왔다. 대국민 설득과 홍보는 법으로 인한 피해 당사자들이 가장 많은 농식품부에서 벌써 오래전부터 해 왔어야 할 일이지 권익위의 용역결과를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입장이 아니었다.

셋째, 정부 내 불협화음이 혹시라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국민 대다수의 여론이 김영란법 시행에 대해 찬성을 하고 있으니 시행주체인 권익위에게 거부권을 통해 충분한 명분을 주고, 이낙연 총리가 나서 문구 수정을 통한 재상정 자체가 미리 기획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 와중에 약자인 농업인들은 이미 초토화 돼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럴리는 절대 없을 거라고 철썩 같이 믿고 싶을 뿐이다. 

‘김영란법’과 관련, 정부의 현 상황은 양치기소년에 비견될 일이다. 농업인들의 절규에 대해“추석 이전 반드시 개정하겠다”고 했다가 이제는“설날 이전에는 반드시 개정하겠다”는 약속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한 야당의원은 김영록 장관에게“이 법이 고쳐지지 않으면 앞으로 농식품부가 하는 일을 농업인들이 절대 믿지 않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한 바 있다. 이 말을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정책당국의 수장은 자신이 내뱉은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아야 한다. 그 한마디에 국민들이 희망과 절망을 오간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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