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농업계 유리천장

▲ 지난달 20일 실시된 농협 국정감사에서는 여성임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유리천장’. 최근 들어 많은 여성들이 유리천장과 관련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농업인을 성별로 나눠 구분했을 때 여성농업인이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여성농업인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들어줘야할 농업계 또한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달 20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중앙회․농협경제지주․농협금융지주국정감사에서는 여성간부가 없는 것이 여실히 들어나기도 했다. 농해수위 설훈 위원장이 “여성간부가 있으면 일어나보라”고 했지만 한 명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늘어나는 여성농업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사람이 없는 농업계, 여성농업인의 권익향상을 내세우고 있지만 여성간부가 부족한 상황에서 과연 여성농업인의 권익이 향상될 수 있을까.

농업계 관리직, 남성이 대다수
농업·농촌의 성불평등 ‘심각’

과거부터 농업은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의하면 2010년을 기점으로 농업인 중 여성농업인의 비율이 남성농업인을 앞서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영주는 남성의 이름으로 돼 있으며 여성농업인은 ‘경영주 외’로 분류된다.

때문일까. 농업계 기관 간부직도 대부분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농업계도 유리천장 문제에 직면해 있다. ‘유리천장’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제용어다. 즉, 충분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음에도 조직 내에 관행과 문화처럼 굳어진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고위직으로의 승진이 차단되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지난달 국감에서 설훈 위원장은 여성간부가 없는 점에 대해 “이 같은 상황은 비난받을 만한 일”이라며 “늘어나는 여성농업인에 비해 오늘 국감장에는 여성 임원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며 “문제의식을 갖고 시정해주길 바란다”고 역설했다. 

이처럼 사회분위기가 양성평등으로 바뀌고 있음에도 보수적인 농업계의 변화는 제자리걸음이기만 하다. 이에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이 “내년 국정감사 현장에는 여성 임원이 앉아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대답했다. 이는 농협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소관 부처와 기관 모두에서 고위직 여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여성농업인의 권익향상을 외치고 있는 기관들마저도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유리천장이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있다. 이 같은 문제점은 여성농업인단체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축사를 해주는 이들마저 남성 간부인 점을 빌어 확인할 수 있다. 여성단체라는 명목을 내세운 단체를 제외하고는 고위직은 전부 남성으로 돼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다 보니 현장에 있는 여성농업인들은 “농업계 남성 관계자들 대부분은 여성농업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척하는 것 같다”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지난 5월 출범한 문재인정부는 성평등 정책의 확산을 위해서 성평등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특히, 남녀동수내각을 3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으며, 그 약속을 착실히 지켜나가고 있다. 또 양성평등기본법에 의하면 여성들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각종 위원회 구성 시 성비를 특정성이 40%가 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농업계 그리고 농업현장까지 이러한 정책이 뻗진 못한 것 같다. 

▲ 공동경영주로 등록된 김창희씨는 남편 한태수씨처럼 농사일에 적극적이다.

“여성농업인 이해하는 여성임원 필요”

여성농업인 ‘공동경영주’로 직업적 지위 인정해야
농업계, 남성 중심의 보수적 색채 버리는 게 우선

농가인구 중 51% 이상이 여성이지만 여성농업인의 지위는 비율처럼 높지 않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제주 서귀포)에 따르면 여성 농업인의 임금 수준은 40년 전보다 뒷걸음질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975년 여성농업인의 1일 노동임금은 남성의 71%였지만 지난 2015년에는 66%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농업인은 농사일을 제외하고도 가사노동까지 전담하고 있다. 이처럼 슈퍼우먼이라고 불려도 될 여성농업인의 노동의 가치를 단순히 남성과 비교하며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2013년 여성농업인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여성농업인 66.2% 이상이 농사일의 절반 이상을 담당한다고 답했으며 82.8%는 집안일의 4분의 3 이상을 도맡아 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자신을 스스로 경영주라고 여기는 여성농업인은 42%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자신 스스로를 보조자 위치에 넣는 것이다. 여성농업인의 평균 영농경력이 32.8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때문에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3월‘농어업 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시행규칙을 개정해 여성농업인을 농업경영의 보조자가 아닌 공동경영주로 등록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를 마련했다. 이에 2016년 말 기준으로 여성농업인 1만1853명이 공동경영주로 등록됐다. 

그동안 농업경영체 등록 때 공동경영주 개념이 없어 남편은‘경영주’로, 아내는‘경영주 외 농업인’으로 등록돼야 했기 때문에 여성 농업인은 직업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어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한 것이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가족끼리 하는 건데 경영주면 어떻고 경영주가 아니면 어떠냐. 전혀 신경 쓸 일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이 바로 여성과 남성의 차별을 이끌어낸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남편과 함께 공동경영주로 등록된 경기도 시흥의 김창희씨는“남편과 똑같이 일을 하기 때문에 함께 경영주로 이름을 올렸다”며“당연한 일인데 이 같은 일을 당연하지 않게 보는 사회가 참 속상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창희씨의 남편 한태수씨는“공동경영주 등록 전에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 내가 남편이지만서도 불합리한 것 같다”며 공동경영주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이처럼 여성농업인과 남성농업인을 동등하게 대우해주는 공동경영주등록에도 큰 문제점이 존재한다. 바로 남편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둘 사이의 대화는 필요할 지 모른다. 하지만 이 같은 제도때문에 여성농업인이 남성농업인에 귀속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농업계만큼 보수적인 색채가 강하다. 농촌을 이끄는 여성농업인의 힘이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농업계 유리천장이 사라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같은 문제가 해결돼 여성농업인을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농업계 임원직이 하루 빨리 확대되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